외국인, 주식 이어 채권도 "일단 팔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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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신용경색과 실물경기 침체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발 경기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국내 시장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시장에서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면서 13일 주식ㆍ채권ㆍ원화값이 동반 폭락했다.
국내 금융시장의 혼란은 실물경기 침체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주가가 급락하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가속화되는 전 세계 경기침체로 수출마저 위축될 경우 MB노믹스의 경제운용은 첫해부터 낙제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내수소비와 수출이 동시에 위축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외국인 매도가 혼란 원인
주식과 채권 원화값이 모두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의 직접적인 요인은 외국인들의 주식 순매도다.
이날 하루 동안에만 외국인들은 4000억원(LG필립스LCD 대량매매 제외)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달 들어 외국인들은 벌써 2조5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지난 1월 8조5000억원에 달했던 외국인 주식순매도는 2월 2조원으로 줄어들면서 매도 공세가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었지만 성급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예전에는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주식을 매도하더라도 그 돈의 대부분을 국고채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최근에 보여지는 모습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지난 1월만 해도 5181계약(1계약=1억원)의 국채선물을 순매수했던 외국인들은 2월 3463계약 순매도로 돌아섰고,3월 들어서는 벌써 1만2470계약이나 팔아치웠다.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 여파로 한국에 투자한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마저 현금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원화 하락(환율 상승)은 이 같은 외국인들의 한국 탈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식을 판 돈을 해외로 빼내다보니 원ㆍ달러 환율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되고,이에 따른 환차손 발생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채권시장에서마저 돈을 빼가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외국인들은 만기 3년 이상 국고채를 많이 매입했으나 최근에는 수요 자체가 없다"며 "다만 재정거래 목적으로 3개월 정도 만기가 남은 국고채를 사고팔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과 금리 변동에 따른 차익거래 기회만을 노릴 뿐 국내 채권시장에 대한 장기적 투자의 관심은 없어졌다는 얘기다.
◆'셀 코리아'까지는 안갈듯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같은 금융시장의 약세가 국내 실물경제의 부실 등 내부요인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흥시장국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셀 코리아'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대부분 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신흥시장국들의 가산금리 프리미엄을 보여주는 이머징마켓본드인덱스(EMBI+)는 지난해 6월1일 1.49%포인트였으나 지난 10일에는 3.06%포인트까지 급등했다.
가산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신흥시장국 국채의 평균가격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국내 주가가 떨어지고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어쨌든 경제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 요인보다 대외환경 요인이 더 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최규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국내 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지난해 말처럼 나쁘지 않은 데다 채권시장의 여건도 양호하다"며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인해 스와프시장의 불안이 당분간 지속되더라도 채권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침체 부작용 우려
문제는 최근의 금융시장 혼란이 외부요인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가 환율 금리의 급격한 변동이 경제주체들의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견조한 흐름을 보였던 민간소비가 주가 급락의 여파 등으로 인해 최근 들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상황에서 환율마저 급등하고 있어 물가불안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환율 상승이 장기적으로 수출을 늘리는 효과를 낼 것으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지만,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심각한 경기침체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어서 실제로 얼마나 늘어날날지는 불투명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