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통화대비 실질실효환율 높지않아 … 시장개입 안해

치솟는 엔화가치 … 담담한 日정부 .재계 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 선 밑으로 내려가면서 엔화 가치가 1995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3일.일본 정부나 재계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재무성은 지난 2주일간 엔화 가치가 달러당 8엔이나 급등했지만 팔짱만 끼고 지켜봤다.

과거 같으면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라'며 정부에 아우성을 쳤을 재계에서도 별다른 위기감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일본 재계단체인 게이단렌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캐논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산업은 '10년 불황'을 거치며 단련돼 저항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배경엔 지금의 엔고가 사실은 '진짜 엔고'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최근 엔화 강세는 달러화의 '나홀로 폭락'에 따른 것으로 주요국 통화(원화 제외)의 강세를 감안하면 현재의 엔화 가치가 그리 높은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일본은행이 산출하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지난달 99.5였다.

1973년 3월 100을 기준으로 그렇다.

엔화 실질실효환율은 1987년 10월 세계적 주가 폭락(블랙 먼데이) 당시는 140,엔화 가치가 사상 최고치(달러당 79.95엔)였던 1995년 4월엔 160을 넘었다.

실질실효환율이 높다는 것은 통화 강세를 의미한다.

따라서 최근의 99.5는 1995년보다는 30% 이상 엔화가 약세라는 뜻이다.

일본 재무성 간부가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엔고라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일본 기업들이 '10년 불황'을 거치며 체질을 강화한 것도 한 이유다.

일본의 주력 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원가 절감을 통해 웬만한 엔고엔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엔화가 꾸준한 강세를 보였던 지난 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 일본 상장사들의 경상이익은 전년에 이어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한국의 KOTRA와 비슷한 조직인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하야시 야스오 이사장은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중반 달러당 80엔에도 버텼다"며 "지금 정도의 엔고가 일본 기업들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엔고가 더 진행되더라도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약 1조달러의 외환 보유액을 자랑하는 일본 재무성은 2004년 초 이후 지금까지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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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실효환율

주요 교역국 통화에 대한 자국 통화 가치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환율.주요 교역국과의 무역액을 가중 평균하고,각국의 물가 변동도 감안해 산출하기 때문에 자국 통화의 실질 가치,즉 구매력을 나타낸다.

일본은 주요국이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1973년 3월을 100으로 해 실질실효환율을 계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