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관들이 미국 내 신용 경색에 따른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장지수펀드(ETF) 관련 대형주를 서둘러 내다팔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14일 장중 1578까지 급락하다 막판 반등해 1600선에 턱걸이한 채 마감됐다.

이날 2800억원어치를 순매도한 외국인은 투매 양상을 보여 일부 종목은 장중에 하한가까지 추락하는 등 시장이 출렁거렸다.

특히 외국계 기관들은 주로 대형주인 ETF 편입 종목(바스켓)을 일시에 쏟아내 수급을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아시아권 주식을 긴급히 내다 팔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주가 수준)이나 수급 상황과 관계없이 이날처럼 외국인이 물량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면 시장은 조정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ETF 1000억 환매한 곳도

이날 외국인의 투매로 신세계 유한양행 등 우량주들이 오후 한때 일시에 하한가로 추락했다.

곧 하락폭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하락세 자체는 막지 못했다.

오후 1시32~34분 사이에 신세계 유한양행 두산 고려제강 애경유화 현대시멘트 유니온스틸 롯데삼강 등 16개 종목이 갑자기 하한가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오전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던 코스피지수도 1578까지 내려갔다.

우량주들의 하한가는 A증권 창구에서 갑자기 쏟아져 나온 매도 물량 탓이었다.

창구는 국내 증권사를 이용했지만 주문 세력은 외국인으로 전해졌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계 고객으로부터 이들 종목의 주식을 매도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50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한 외국계 기관은 ETF 환매 물량만 1000억원 상당을 내놓았다.

이 외국계 기관은 ETF 운용사인 B사를 통해 환매한 ETF 편입 주식을 바로 시장에 내다팔았다.

해당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 기관에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1000억원가량의 ETF 환매 요청이 들어왔다"며 "이 기관은 ETF와 바꾼 주식을 증권사 창구를 통해 모두 처분했다"고 말했다.



◆'외국 투자회사 줄도산' 루머도

일부 외국인이 앞뒤 안 가리고 주식을 내다파는 것은 그만큼 유동성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금융시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촉발된 신용 경색으로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다.

이날 장중에는 칼라일캐피털코퍼레이션(CCC)이 '결국 최종 부도 처리됐다'는 루머까지 돌아 분위기가 흉흉했다.

또 한 외국계 투자은행은 마진콜(증거금 부족분 상환 요구) 규모가 325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헤지펀드들의 줄도산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증권 국제부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헤지펀드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아시아권 주식을 파는 것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외국인이 우량주를 갑작스럽게 팔아치우는 것에 대해 외국인의 로스컷(손절매)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최근 급등하면서 앉아서 환율 급등분만큼 손실을 본 외국인이 우량주를 중심으로 일부 보유 중인 주식을 던졌다는 설명이다.

다만 투자금 회수만을 고려했다면 외국인이 1~2분 만에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정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설득력은 떨어진다.

◆코스피지수 1600선은 지지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투매성 순매도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1600선이 극적으로 지켜진 데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장 마감 동시호가 전 1594.64를 기록했으나 동시호가를 통해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5.62포인트를 회복,1600선 위로 올라선 것이다.

개인과 투신을 포함한 기관투자가가 각각 1300억원,700억원 넘게 순매수하며 낙폭을 줄이는 일등공신이 됐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파트장은 "장중 지수 변동폭이 60포인트를 넘을 정도로 변동성이 크다는 건 그만큼 투자심리가 취약하다는 걸 보여준다"며 "금요일 변동성이 확대되는 경향이 재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600선을 지켰다는 건 전 저점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지고 '다중바닥' 형태의 기간 조정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1600선 아래서는 '싸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데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000억달러 유동성 공급으로 금리 인하폭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으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와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의 1분기 실적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서정환/김재후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