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 서울대 교수·경제학 >

이명박 정부는 보수 정부다.

그리고 보수 정부답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통칭되는 지난 10년간의 진보정부와 대비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경제 정책으로는 출총제 폐지를 포함한 규제의 실질적 완화,조세 감면,공기업 민영화 등을 공표해 놓은 상태다.

대북 정책으로는 한ㆍ미 공조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려는 기조이고,핵폐기와 북한의 개방을 전제로 경제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법과 질서의 확립을 통해 선진사회를 이루겠다는 의지도 표명(表明)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영국의 대처 총리가 취한 것과 유사하다.

이들은 감세와 정부역할 축소를 통해 경제회복을 도모했다.

그리고 적국으로 간주됐던 구 소련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레이건은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명명했다.

철저한 반(反)공산주의 외교정책을 편 대처는 소련 타스통신에 의해 '철의 여인'으로 불려졌다.

그리고 각각 미국의 항공관제사 노조,영국의 탄광노조 등 강성노조와 대결을 벌여 이들을 무너뜨렸다.

레이건은 재임에 성공해 1981~1989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며 대처는 1979~1990년 동안 영국 총리직을 지냈다.

영국의 경우 대처 이후에 총리가 된 존 메이저 기간을 포함하면 영국의 보수정부는 1997년까지 지속된 셈이다.

그러면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정책을 벤치마킹하기만 하면 한국에서 보수는 장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보수적인 정책만으로 정권을 오랫동안 지탱한 보수는 없다.

실용적 정책만으로 선진국이 된 경우도 없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필요로 한다.

진정한 보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믿음과 과도한 자유를 제어할 수 있는 자율성,도덕성에 기초하고 있다.

정부보다 시장을 신뢰하려면 시장의 근간인 사회 규범,혹은 애덤 스미스의 말을 빌리자면 동감(sympathy)의 정신이 잘 작동해야 한다.

새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 보수'는 지난 시대의 이념적 갈등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의미만 있다.

미래의 시대를 열어가는 신(新)테제로서의 의미는 빠져 있다.

진정한 보수는 작은 정부와 큰 도덕의 결합체이다.

그런데 그동안 새 정부의 인사 행태와 정책의 방점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 보수는 '작은 정부'와 '왜소한 도덕성'의 담합으로 보인다.

레이건 대통령의 재임 동안 미국 사회의 도덕성은 실질적으로 변했다.

시민들 상호 간 신뢰 정도는 그 전후 기간에 비해 20%가량이나 높았다.

대처는 개인의 자조(自助)를 강조하면서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도덕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지도자들이 본(本)을 보여야 사회의 도덕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야 강성노조를 상대해서도,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타국의 정권에 대한 비판에도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법이다.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고 통쾌하게 해 주는 것은 실용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엘리트의 품격과 도덕성이 실용과 만날 때에야 국민들을 감동시킨다.

그래야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주는 참된 보수가 될 수 있다.

새 정부는 한국 사회를 신뢰와 규범 중심의 선진 사회로 만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도 중국이 1인당 소득 수준 1000달러를 달성하고자 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일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려던 시대에나 맞는 이야기이다.

빨리 그런 생각을 벗어나야 진정한 보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보수와 얼치기가 아닌 실력있는 진보가 진검승부를 벌일 때에야 선진사회로의 진입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