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금 등의 상품과 유로ㆍ엔화로의 국제 투자자금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대부분 미국 주식이나 채권 등 달러화 자산과 글로벌 증시로부터 이탈한 돈이다.

이로 인해 증시는 연일 추락하고 있는 반면 원유와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유로화 및 엔화 가치도 연일 급등 추세다.

특히 지난해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에서만 자금이 순유출됐지만 올 들어선 이머징마켓 펀드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 원자재와 외환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증시로만 몰렸던 글로벌 유동성이 상품ㆍ외환시장으로 방향을 튼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여파로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서다.

게다가 경제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은 '돈 쏠림'을 부채질하고 있다.

뉴욕선물시장에서 금값은 지난 14일 온스당 1000달러를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국제유가도 13일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 111달러까지 올랐다.

세계의 돈들이 상품시장으로 쏟아져 들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헤지펀드까지 가세하면서 상품시장은 투기판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상품 가격은 수급원리와 따로 움직이고 있다.현재 미국의 휘발유 재고는 작년 11월부터 18주간 연속 증가해 전년 동기 수준을 10% 웃돈다.

과거 5년간 추세를 봐도 두드러지게 높은 수준이다.

월드골드카운슬에 따르면 금 최대 소비국인 인도의 작년 4분기 금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64% 감소했다.세계 전체적으론 17% 줄었다.

석유 재고가 늘고 금 소비는 줄어들어도 유가와 금값이 폭등하는 건 투기수요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상품시장에 돈이 몰리는 현상은 통계로 확인된다.

국제 상품시장에서 운용되는 총자산 잔액은 작년 말 15조엔 안팎이었지만 올 들어 17조~18조엔으로 증가했다.

세계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ETF(상장지수펀드)의 투자잔액도 현물 금으로 환산하면 800t을 넘어 최근 2년 새 두 배로 늘었다.

미국의 간판 연금펀드인 캘리포니아주 퇴직연금기금은 주식 투자비율을 60%에서 54%로 낮추고 대신 국제상품 등의 비율을 높일 방침이다.

세계 상품시장 규모는 약 10조달러다.금 원유 금속 농산물의 연간 생산량 등을 모두 합친 것이다.

이는 세계 주식ㆍ채권 시가총액(약 100조달러)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주식ㆍ채권시장의 자금 몇 %만 상품시장으로 이동해도 상품 가격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달러 이탈자금은 상품뿐 아니라 유로ㆍ엔화시장으로도 급속히 흘러들어 환율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14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98.89엔으로 치솟아 1995년 9월 이래 처음으로 99엔대를 기록했다.

유로화도 한때 1.5688달러까지 올라 1999년 유로 출범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미 다우지수가 올 들어 10.9% 하락한 것을 비롯 일본 닛케이지수 -25.0%,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스지수 -22.6%,인도 센섹스지수 -28.7% 등 글로벌 증시는 약세 행진이다.

문제는 상품과 유로ㆍ엔화로의 '글로벌 머니 러시'가 좀체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FRB는 18일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 돈을 더 공급한다는 얘기다.불어난 돈은 다시 상품시장과 유로ㆍ엔화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