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렇게 멍든 주식시장을 보고 있자니 월요일 아침부터 짜증이 난다.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던 대형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결국 JP모건에 헐값으로 팔리게 되면서 미국의 신용 리스크가 생각보다 심각한 시스템 리스크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 여파로 국내 증시는 물론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급락하고 있다.

외환 시장에선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고, 금 가격은 온스당 1020달러 선까지 치솟는 등 글로벌 금융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개장 직후 1555포인트까지 곤두박질치며 2차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1580선은 물론 지난 1월31일 기록한 장 중 저점 1570선마저 하회하고 있다.

현재 주가는 지난해 5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개장 두시간 만에 3000억원에 가까운 매물을 쏟아내면서 가뜩이나 힘든 증시를 사정없이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도 긴급 자금 지원도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시장의 신뢰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7일 메리츠증권 조성준 이코노미스트는 "잊을만 하면 부각되는 금융시장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고해성사가 금융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면서 "신뢰도의 하락은 금융권의 대출 억제와 신용회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시장 전체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너진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판단.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주택시장이 안정을 되찾아야 하고 추가적인 금융손실 처리가 마무리돼 충분한 대손상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아직까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여건이 되지 않고 있어 당분간은 약세장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게 그의 판단이다.

美 S&P500 지수의 추가 하락도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보수적인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조언.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도 "칼라일 캐피탈도 파산 절차를 밟고 있고 손버그가 다음 차례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돌고 있다"면서 "리만브라더스 등도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도는 등 곳곳에서 믿을 것이 없다는 불신이 팽배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공황 심리에 휩싸이면서 美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왔다고 지적.

따라서 18일(현지시각) 미국 FOMC 회의에서 최고 1%P 공격적인 추가 금리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금리인하가 달러 약세로 연결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 효과는 줄어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 연구원은 "금리인하의 약발이 제대로 받으려면 유로존의 금리인하가 반드시 필요한데 항상 뒷북을 치는 유럽 중앙은행의 정책 행보를 감안할 때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율이 연일 급등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고, 패닉에 따른 다운 사이드와 오버슈팅이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마지노선으로 정한 1540선의 지지 여부도 장담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

다만 그는 "1740선을 단기 고점으로 지수가 180포인트나 급락한 상황이어서 지금의 하락은 막바지 충격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소집한 긴급 대책회의 등에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경우 단기적인 주가 반등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시장이 어렵기는 하지만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비관론이 점점 힘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쏠림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NH투자증권의 임정석 투자전략팀장은 "현재 불거지고 있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잠재적 불안의 정점이 아닌 현실화하는 불안의 정점"이라면서 "성급한 예단과 쏠림보다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균형감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의 순환 고리가 좀 더 연장될 수 있지만, 베어스턴스의 투항은 미국 신용경색 문제에 보다 적극적이고 새로운 접근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정책 대응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대우증권도 금융기관들의 실적 발표가 끝나는 주 후반부터 시장에서 안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 금융기관들이 자체 판단하고 있는 손실을 솔직히 털어놓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투명성 제고를 통해 불신의 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증권사 이경수 연구원은 "투자은행의 투명성이 확보되면 실적 발표 이후 이익에 대한 신뢰감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FOMC 회의에서 연준의 시장 대응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며, 중국 증시의 흐름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인대가 마무리된 후 중국 긴축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지만 정부가 추가적인 금리인상보다는 위안화 절상을 통한 인플레 억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과도한 걱정은 필요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원은 "결국 이번주 초중반엔 주가가 곡예 비행을 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외 변수들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주 후반부터는 주가가 다소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반등의 실마리도 거기서부터 출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에 사로잡혀 투매에 동참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터닝 포인트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시장이 힘들 땐 공격보다 방어가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러설 때는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