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송보송한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16세 더벅머리 총각이 '지긋지긋한 배고픔만은 면해보자'는 생각에 서울행 열차에 올라탄 건 꼭 68년 전이었다.

운명적으로 '약장수'가 된 청년은 놀라운 영업능력으로 돈을 쓸어담았고,마침내 쓰러져가는 제약사를 인수했다.

CEO(최고경영자)로 변신한 그는 정로환,정력은단,훼미닌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회사를 매출 600억원짜리 중견 제약사로 일궈냈다.

한국 제약산업의 1세대를 이끈 이선규 동성제약 회장이 1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24년 충남 아산군 둔포면에서 태어난 고(故) 이 회장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월사금은 오랫동안 밀렸고,점심 메뉴는 언제나 '꽁보리밥에 고추장 반찬'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서울행을 택한 그에게 어머니는 검정콩 두 말을 팔아 옷가지와 여비를 마련해줬다.

서울에 온 이 회장은 약방을 운영하던 외삼촌의 도움으로 도매상에서 약을 떼어다 소매로 파는 일을 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약장수'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 회장이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55년 부도난 고려은단의 경영을 떠안으면서부터다.

은단의 대명사가 된 '정력은단(精力銀丹)'도 그의 작품이다.

출시 초기 판매가 순조롭지 않자 이 회장이 직접 정력은단을 들고 전차에 올라타 '마포종점' 노래를 부르면서 "은단 사세요"를 외친 일화는 제약업계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1957년 동성제약을 인수한 뒤에도 이 회장의 '파격 행보'는 계속됐다.

일본에서 접한 정로환을 동성제약의 주력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 정로환 제조업체에서 은퇴한 공장장에게 매달려 제조비법을 받아내는가 하면,정로환 수요를 가늠하기 위해 해수욕장 화장실에 쌓인 변을 일일이 살펴보기까지 했다.

그는 생전에 이런 일화들을 소개하며 "오늘의 성공은 한번 물면 안 놔주는 '바닷가재 정신' 덕분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2000년대 들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이선규 약학상'을 제정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며 노년을 보냈다.

동성제약은 이 회장의 장례를 회사장으로 치르며,19일 충남 아산공장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남복희씨와 장남 긍구(포쉬에 헤어코스메틱 대표),차남 상구(서울아산병원 신장내과 교수),3남 양구씨(동성제약 대표) 등 3남1녀가 있다.

나천열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가 사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발인은 19일 오전 5시.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