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 실적 선방에도 메릴린치 위기설
금리인하 약발은 갈수록 떨어질 가능성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 문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일단 한고비를 넘긴 듯한 모습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 및 유동성 공급 확대에다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러더스가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것이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요인이 됐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가 일단 잠복했을 뿐 신용위기는 계속되고 있는 상태여서 언제 또다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주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던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단 안정되는 모습으로 돌아섰다.

18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2002년 7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유럽과 아시아 증시도 급등세를 연출했다.

미 달러화 가치도 모처럼 상승세로 반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한숨을 돌린 것은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러더스의 1분기(작년 12월~올 2월) 실적 발표 영향이 컸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분기 중 15억1000만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전년 동기에 비해 53.7% 감소했지만 월가의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다.

우려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자산상각액도 10억달러에 그쳤다.

'제2의 베어스턴스'로 주목을 받았던 리먼브러더스도 1분기 중 4억8900만달러의 순이익을 내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일단 성공했다.

모건스탠리도 1분기에 작년동기 대비론 42% 줄었지만 월가의 예상치보다는 양호한 15억5000만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FRB가 이날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와 재할인율을 각각 0.75%포인트 인하한 것도 불안을 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금리 인하폭이 당초 시장의 기대치인 1.0%에 미치지 못했고 인플레이션 압력 증가에 대한 FRB의 우려 표명도 커졌지만 추가 금리인하 방침을 확실히 한 것이 도움이 됐다.

특히 비은행 금융회사에 대해 직접대출을 실시한 것도 유동성 위기설을 잠복시키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미국의 경기침체 양상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데다 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 상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의 본질은 유동성 위기가 아닌 지급불능 위기(누리엘 루비에 뉴욕대 교수)"라는 진단도 있어 불안요인이 불거지면 위기는 재연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실제 와코비아은행은 이날 "모기지 연계채권 금액이 304억달러로 월가 투자은행 평균치의 3배 이상인 메릴린치가 가장 위험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주목되는 게 미 행정부와 FRB의 추가 조치다.

FRB는 일단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계속할 전망이다.

월가에서는 오는 4월과 6월로 예정된 FOMC에서 잇따라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연 2.25%로 내려앉은 기준금리가 6월엔 1.5%대까지 하락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제로 금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을 경우 FRB는 모기지연계증권 직접 매입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정부에서도 '제2의 경기부양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경기침체로 인해 금리 인하나 유동성 공급 대책의 약발이 떨어지는 경우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뉴질랜드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금리인하는 약간의 혈액을 공급하겠지만 금융부문 붕괴의 근저에 깔려 있는 문제들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