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제도가 기업 규제완화의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주 회사는 지난 10년간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출자를 과도하게 제한해 이젠 오히려 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새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하면 지주회사는 배당세 면제 외엔 별다른 혜택이 없어 규제만 남게 된다는 지적이다.

지주회사를 싫다고 해서 계속 피할 수가 없다는 게 기업들의 고민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상장ㆍ비상장 자회사 주식가액 총액이 모기업 자산가치의 50% 이상이 되면 지주회사로 강제 지정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지금 제도를 손질하지 않으면 이 같은 폐해가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한 40개 그룹은 물론 향후 전환 가능성이 높은 다른 기업들로 확산돼 성장잠재력을 크게 훼손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M&A 구경만

앞으로 인수ㆍ합병(M&A)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이는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대우인터내셔널 하이닉스 등은 매각가격이 대부분 수조원대로 추산된다.

이런 상장사를 인수하는 기업들은 현재 제도에서는 거의 모두 '비자발적으로' 지주회사로 지정돼 각종 출자제한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금호산업은 2007년 대우건설 인수로 회사 의지와 관계없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지주회사로 지정되면 자회사 지분율을 상장사는 20%,비상장사는 40%까지 올려야 하고 자회사와의 공동출자 및 자회사-손자회사 공동출자를 포기해야 한다.

손자회사의 자회사인 증손회사를 두려면 지분을 100% 인수해야 한다.

반면 부채비율은 오히려 200%로 낮춰야 한다.그룹 지배구조를 전반적으로 다시 짜야 하는 셈이다.

M&A업계 관계자는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가 이제까지 M&A 시장에 나오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지주회사의 출자 규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주회사 '역차별'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제한도 문제다.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한 SK그룹은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SK그룹은 지주회사 SK㈜ 밑에 SK네트웍스가 있고 이 회사가 SK증권 지분을 갖고 있다.따라서 SK그룹은 유예기간이 끝나는 2009년 6월까지 SK증권을 팔든가 SK증권 지분을 떼어내 다른 계열사로 옮겨야 한다.

이와 관련,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SK증권은 필요한 관계사지만 공정거래법에 따라 매각해야 한다"며 "지주회사에 속하지 않은 관계사에 지분을 넘기는 방안도 있지만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롯데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증권과 보험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금융 부문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을 때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은 사업 확대는커녕 오히려 보유 중인 회사를 내다 팔아야 하는 기막힌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한화도 대한생명의 자산가치가 높아 지주회사 전환이 불가피 하지만 금융자회사 등을 매각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고심하고 있다.동양ㆍ두산 등도 같은 문제로 지주회사 전환에 고심하고 있다.

메리츠증권 전용기 연구원은 "한화가 지주회사로 가려면 현행 규제에서는 지주회사를 두 개 만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대한생명 한화증권 등을 보유하는 금융지주회사 외에 산업지주회사를 만들어 한화 석유화학 건설 등을 거느려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메이저(옛 동양시멘트)를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동양그룹도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로 가려면 동양메이저를 따로 떼어내야 매각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다.두산도 BNG증권중개 두산캐피탈 등을 처분해야 지주회사 모양을 갖출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한 동원이 두 개의 지주회사를 만들기는 했지만 당시 금감위가 법에 없는 계열분리를 요구해서 이뤄진 케이스여서 다른 기업들이 이 방안을 채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선책은

정부는 투자확대 차원에서 지주회사 규제 완화를 준비 중이다.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안은 지주회사 부채비율 상한선을 200% 이상으로 높여주고 비계열사 지분을 5% 이하만 보유하도록 한 규정도 없애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작업은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재 지주회사 투자제한 규정이 공정거래법은 물론 금융지주회사법,자본시장통합법,증권거래법 등에 다양하게 걸쳐 있다는 점에서 통합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보다 상위 개념인 '금산분리' 원칙을 토대로 지주회사 규제가 만들어져 있으므로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통합적인 규제완화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준/장창민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