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IB) 부문을 강화하고 있는 한화그룹의 투자 성적표가 초라하기만 하다. 부동산의 경우 싸게 팔아 비싸게 되사는 식이다.

한화그룹은 오는 24일 입찰이 예정된 여의도 한화증권 빌딩의 재매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증권은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는데다 19일 국민연금공단과 공동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해 매입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문제는 매입 가격이다. 한화는 2003년 당시 ‘코크랩3호’라는 기업구조조정 부동산 회사에 1400억원 가량에 한화증권 빌딩을 팔았다. 그렇지만 부동산 업계는 이 빌딩의 시세를 최소 2500억원에서 많게는 3600억원까지 보고 있다.

국민연금과 절반씩 인수 대금을 낸다고 가정하면 팔 때보다 돈을 더 주고도 건물 지분을 절반밖에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또 바꿔 말하면 5년간 최고 2000억원의 자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부동산 자산관리업계 관계자는 “여의도 권역의 사무실 공실률이 1% 미만일 정도로 수요가 많다”며 “ 2800억~3000억원이 적정 수준일 것으로 보이나, 향후 금융권 메카로서의 여의도 가치를 높게 본다면 3600억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덩치를 키워가는 여의도 증권회사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도 매입가 상승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조직은 확대돼 가고 임대료 부담도 무시할 수 없어 사옥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여의도에 마땅한 물건이 없는 가운데 한화증권 빌딩이 매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10개 가량의 대형 금융사와 자산운용사 등이 한화증권 빌딩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그룹의 ‘비싸게 되사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한화석유화학도 2002년 1800억원 가량에 팔았던 서울 중구 장교동 사옥을 3500억원에 재매입했다. 2배 가량을 더 주고 산 것이다.

반면 2006년 말 여의도 팬택 빌딩을 3.3㎡당 1000만원 가량 시세로 290억원에 매입한 신영증권은 이후 빌딩 가격과 임대료 상승을 감안할 때 상당한 자산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 대조를 이룬다.

특히 사옥을 재매입하는 의욕과는 달리 한화증권 주가는 추락하고 있다. 19일 9470원에 장을 마치면서 지난해말 2만2900원에 비해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락한 상태다.

이처럼 주가가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화증권의 주가관리 실력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증권 투자 포털사이트인 팍스넷에서는 한화증권 투자자들이 “자기 주가도 관리 못하면서 투자설명회 하면 누가 믿겠느냐. 투자설명회 하지 마라”는 등 비아냥 섞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화증권 주가는 올 초부터 유상증자설로 고전하다 지난 1월 말 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현실화 되면서 발목을 잡혀 있다.

주가가 이렇게 떨어지면서 당초 계획했던 자금 조달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한화증권은 지난 10일 정정 공시를 통해 목적자금 규모가 2500억원에서 1890억원 규모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계획했던 자금보다 600억원 이상 덜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한편 한화증권은 19일 유상증자 실권주와 단수주 등 62만여주를 진수형 대표이사 등 임직원 99명에 배정한다고 밝혔다.

한화증권 관계자는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에게 7만주 가량을 배정하고 나머지는 한화 계열사에서 파견나온 직원들에게 배정한다”며 “우리사주조합에 포함되지 않는 임원과 파견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박철응 기자 he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