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업계가 파업에 돌입한 19일 오전 9시 서울 은평뉴타운 2지구의 한 공사 현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근로자들로 북적이던 아파트 골조공사 현장의 절반가량이 텅 빈 채 적막감만 흐르고 있었다.
매일 500~600t 규모로 반입되던 레미콘 공급이 끊기면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현재 38개동 1800여 가구가 지어지고 있는 2지구의 다른 아파트 현장 역시 레미콘 타설에 앞서 진행하는 형틀 설치와 철근 작업만이 간간이 이뤄질 뿐이었다.
공사를 맡고 있는 A사 관계자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이번 주 월요일까지는 펌프카 파업으로 공구리(콘크리트)를 못쳤는데 이제는 레미콘 업체들까지 파업해 작업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며 "파업이 열흘만 계속되면 모든 공사현장이 '대마'(작업 중단을 가리키는 업계 속어)가 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같은 날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공사 현장 역시 레미콘 트럭은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김흥재 대한주택공사 판교사업단 개발사업팀 차장은 "블록마다 보통 하루에 1~2판(1판은 한 개 층을 쌓아 올리는 데 필요한 시멘트,레미콘 트럭 50대 물량) 타설 작업을 하지만 어제 대부분의 작업장에서 급히 3판을 미리 쌓았다"며 "형틀 공사와 철근 박기 작업 등으로 향후 2~3일은 공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모든 작업장이 '올 스톱'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수원~평택 고속도로 공사 현장도 작업 전면 중단 위기에 놓여있다. 시공사인 B사 관계자는 "오늘은 도로 바닥에 흙 쌓는 작업인 토공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다음 주까지 파업이 계속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레미콘 파업에 따른 후폭풍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사 하도급업체들과 일용직 근로자,식당(함바집) 운영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은평뉴타운 하도급업체 D사 대표인 송모씨는 "평소에는 50명가량이 레미콘 작업을 위해 나왔는데 오늘은 4~5명을 빼고는 모두 집에서 쉬고 있다"며 한숨 지었다.
판교신도시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근로자 작업반장인 김모씨도 "일을 못하면 인부들은 최하 7만원의 일당을 그냥 날려버리기 때문에 생계가 막막해진다"고 토로했다.
은평뉴타운 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모씨도 "레미콘 파업을 한다고 해서 평소 600여명분의 밥을 400여명분으로 줄였다"며 "매상이 40%가량 줄어들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건설사 "파업부터 풀어라"
이번 파업에 참여한 레미콘업체들은 현재 레미콘 납품가격이 인상되지 않을 경우 연쇄도산을 막을 수 없어 공급중단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번 레미콘 공급중단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사들은 "불법 공급중단을 즉각 철회해야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강경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는 이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긴급총회를 열어 △레미콘 업계의 불법 공급중단 즉각 중단 △정부의 골재 채취 허가 확대를 통한 가격 및 수급안정 △지난해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의 합의서 내용 준수 등을 촉구했다.
건자회 관계자는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가 지난해 7월 레미콘 가격을 4% 인상할 때 오는 8월까지는 가격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던 만큼 이 같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우리도 미분양 누적,철근값 폭등에 레미콘 공급 중단까지 겹쳐 건설사들은 감내하기 힘든 수준에 와있다"고 하소연했다.
건설업계는 레미콘 값을 12%(㎥당 6000원) 정도 올리면 807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권홍사 대한건설협회장도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2006년 말 자재값 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단품 슬라이딩(특정 자재값이 15% 이상 등락할 경우 해당 자재의 계약금액을 조정해 주는 것)제도를 도입했지만 세부 기준안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한편 국토해양부는 관계자는 "이르면 20일 중으로 지식경제부와 함께 레미콘-건자재회 간 긴급 협상테이블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레미콘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두 업계에 강력히 촉구할 방침"이라고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임도원/정호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