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 ks+partners 이사 hslee@ks-ps.co.kr >

온몸이 찌뿌드드한 날,A에게 찜질방은 필수코스다. 찜질방에 누워서도 요즘 몸은 왜 이리 변덕스러운지…,갱년기 신호탄인가. 걱정이 태산이다. 바로 이때 옆자리에 나란히 누운 두 여인네들의 얘기가 귀에 쏙 들어온다. "언니,피부 좋아졌네." "얘는 피부만 좋아진 줄 아니? 화끈 화끈 열나는 고질병이 감쪽같이 사라졌어." 비법이 뭐냐고 채근하는 동생에게 언니는 몸을 밀착하고 당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속삭인다. 눈치 없는 동생이 살짝 큰소리로 되묻는다. 덕분에 A는 제약회사 제품명까지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 비법을 전수한 언니는 눈치 없다며 동생 옆구리를 살짝 찌르는 모습이 '남철 남성남' 콤비를 보는 듯하다.

A는 맘이 바빠진다. 배짱 좋은 여인네라면 그게 그렇게 효과가 좋으냐며 즉석에서 상세한 조언을 구할 것이고,소심한 여인네라면 행여 잊어버릴까 허둥지둥 샤워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약국에 들를 것이다.

'입소문마케팅'이 뜨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입소문마케팅의 타깃이 되기도 하고,어느새 친구들이 이웃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말에 설득당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특히 광고 미디어가 첨단을 달리는 마당에 따지기 좋아하는 김 여사님도,논리라면 최고봉을 자랑하는 이 교수님도 왜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한마디에는 한 점 의심없이 설득당하는 걸까. 성별,나이,취향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력적인 사은품을 가득 담은 휴대폰 문자를 아무리 보내본들,찜질방 옆자리 여인네들의 "효과 봤다"는 속삭임만큼도 힘이 없는 이유는 뭘까. 24시간 인터넷에서 마주치는 배너광고와 쪽지로 보내오는 파격적인 메시지들이 친구의 "사지 마" 일갈에 맥을 못추는 이유는 뭘까. 한 달에 몇 백억씩 쏟아붓는 TV광고에는 꿈쩍도 않던 사람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이 차 타보니까 괜찮더라고요"란 한마디에 지갑을 여는 이유는 뭘까.

최근 몇 년 동안 입소문 마케팅의 희생자(?)가 되길 몇 번 반복하다가 내 질문은 간신히 답을 찾았다. 아마도 그것은 물건을 파는 이도 사는 이도,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도 받는 이도 결국은 사람이기에 '사람을 설득하는 것도 사람'이 정답이란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첨단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기죽는,그러나 사람에게 관심 많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케터나 광고인이라면 지금 이 순간부터는 절대 주눅들지 말자. 나를 포함한 우리는 '첨단' 미디어는 몰라도 '사람'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