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비롯 콩 옥수수 등 곡물 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식량안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일반 물가까지 덩달아 오르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 확산되면서 이제 우리도 국가차원에서 식량산업 보호ㆍ육성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 주요 곡물 수출국들의 수출제한조치 등 식량자원 민족주의 이른바 곡물 내셔널리즘에 맞서 식량무기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석유에 이어 곡물이 글로벌 자원전쟁의 화두로 떠오른 셈이다.

물론 식량안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식량은 곧 안보'로 통용될 정도로 식량 증산은 국가 최대 현안의 하나였다.

정부는 녹색혁명을 국가적 과제로 내걸고 신품종 개발에 온힘을 다했다.

혁명에 비유될 정도로 총력을 쏟은 데 힘입어 다수확종인 '통일볍씨'를 개발하고 주곡인 쌀 자급화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밥맛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맛 없는' 통일벼는 결국 1978년 보급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식량문제는 우리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비교우위론을 근거로 외국의 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게 국가경제에 더 보탬이 된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일부에서는 국내에서 농업생산이 유지되지 않더라도 곡물을 해외에서 살 수 있는 돈만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 5위 곡물수입국이며 곡물자급률 또한 28%에 불과한 것 등이 이를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다.

그나마 99%의 자급률을 보이고 있는 쌀을 제외하면 식량자급률은 밀 0.2%,옥수수 0.8%,콩 11.3% 등 평균 4.6%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 빈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애그플레이션을 계기로 30여년 만에 식량안보 논란이 재연된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다.

더욱이 지난 20년간 세계 곡물생산은 고작 1% 증가한 반면 소비량은 작년에만 24%가 늘어나면서 세계 곡물재고율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곡물생산국들이 자기 곳간을 먼저 채우기 위해 쌀 보리 밀 옥수수 등의 수출제한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식량무기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비싼 돈을 주고도 곡물을 살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우리의 식량사정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정도로 나빠졌다든가,곡물수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큰 재앙이 닥쳐올 수 있다는 등 식량안보론자들의 주장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곡물재고율이 세계식량농업기구가 식량안보라는 기준에서 제시한 18~19%에 훨씬 못 미치는 등 식량사정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식량안보의 당위성을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내외 식량공급원 확보 등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농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식량의 자급률을 끌어올림으로써 실추된 식량주권을 회복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김경식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