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베트남 호찌민에서 팔리는 삼성전자의 32인치 LCD TV 가격은 900달러다.

1인당 국민소득이 720달러밖에 안 되는 베트남이지만 호찌민에서 삼성 TV는 한 달 평균 1000대나 팔린다.

삼성 TV가 곧 '부(富)의 상징'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2.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짝퉁' 제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애니콜(Anycall) 휴대폰을 모방한 '애미콜(Amycall)'이 등장한 것.삼성 휴대폰이 '명품' 대접을 받으면서 생긴 현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삼성상회를 모태로 출발한 삼성그룹이 22일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삼성의 역사는 많은 국내 기업들에는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국민들에게는 '초일류 기업을 배출했다'는 자긍심을 심어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삼성은 '일본 전자업체의 하청기업'에 불과했다.

일본에서 부품을 들여와서 전자레인지와 브라운관TV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1983년 2월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을 계기로 진출한 반도체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당시 일본 전자기업들은 "삼성이 뭘 만들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거렸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비웃듯 삼성은 보기좋게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연간 매출은 150여조원으로 1987년(17조원)보다 8.9배나 늘었다.

이 중 80%는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인다.

1953년 고작 한 곳뿐이던 해외 거점은 지난해 세계 67개국 470여곳으로 늘었다.

1987년 1조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도 2006년 140조원으로 급증했다.

세계 시장을 석권한 제품도 D램 낸드플래시 LCD-TV 드릴십 등 21개에 달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000년 이후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TV 10대 중 2대는 삼성 로고가 붙은 제품일 정도다.

휴대폰도 지난해 2분기부터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이 같은 삼성의 성과는 고스란히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삼성 제품을 모방한 중국산 짝퉁이 난무하고,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등에서는 삼성 제품이 매년 '가장 갖고 싶은 제품'으로 꼽힐 정도다.

지난 70년간 해외에서 바라보는 삼성에 대한 시각도 크게 달라졌다.

미국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브랜드가 매년 발표하는 기업 브랜드 가치 평가가 단적인 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까지만 해도 삼성은 이 평가에서 100위권 안에 진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5년 평가에서는 150억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 기업 중 20위에 올랐다.

삼성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전자업체로는 마이크로소프트,노키아,제너럴일렉트릭(GE),인텔,IBM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일본 소니는 삼성에 다섯 계단이나 뒤진 25위(129억700만달러)에 그쳤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지난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평가에서도 삼성은 46위에 올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2006년 삼성전자의 신용평가 등급을 'A3'에서 'A1'으로 두 단계 높였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A3)보다 높은 것은 물론,세계 전자업체 중에서 GE(Aaa)를 빼고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삼성의 이 같은 고속 성장에 대해 해외 경쟁업체들이 질시를 보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최근 일본 전자기업들이 삼성에 빼앗긴 전자산업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성장은 해외 시장에서 국내 다른 기업에 대한 평가도 바꿔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70년간 이처럼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성장속도가 예전만 못할 뿐더러 주력사업인 전자 부문에서는 일본과 대만업체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비자금 특검 수사로 인해 경영계획 수립은 물론 정기인사도 실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을 불러왔던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전체 인력의 3분의 1을 구조조정했던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란 인식도 팽배하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매번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해법을 내놨고,이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해 왔다"며 "창립 70주년은 삼성이 특검수사란 위기를 딛고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또 다른 해법을 내놓아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