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약(良藥)은 입에 쓰다고 한다.

입에 쓴 게 몸엔 좋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방에선 '쓴 맛'이 개위(開胃,위의 활동을 돕다),조습(燥濕,기운을 돋우다),사화(瀉火,열을 내리다)의 효능을 지녔다고 본다.

인삼 쓴 거야 아는 일이고,상처를 아물게 한다는 알로에는 아라비아어로 '쓰다'는 뜻이다.

어지간히 썼던 모양이다.

녹차의 알싸한 맛을 내는 카테킨 성분이 암세포 발생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일본 후생노동성).한창 제철인 냉이 달래 머위 두릅 씀바귀같은 봄나물이 입맛을 돋우고 자꾸 나른해지는 몸에 원기를 불어넣는 것도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무관하지 않다.

쓴맛의 효능은 춘곤증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하도 써서 고채(苦菜)로도 불리는 씀바귀는 건위(健胃)는 물론 해열 효과가 뛰어나 봄에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고,냉이는 생리불순과 변비에 좋다고 한다.

참두릅 엄나물은 혈액순환을 돕고,데친 뒤 물에 담가 쓴 맛을 우려내야 하는 머위는 동맥경화도 예방한다는 마당이다.

아이들은 그래도 나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물 맛은 쓴맛의 각성효과를 아는 나이가 돼야 안다.

기원 전 중국의 부차와 구천의 복수혈전에서 비롯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은 유명하거니와 쓸개를 맛보던 구천이 섶에서 잔 부차를 이긴 걸 보면 쓸개의 힘이 더 컸던 셈이다.

억지로라도 스스로를 다잡고 기운을 차려야 하는 이들이 많은 걸까.

계절에 상관없이 에스프레소같은 진한 커피,다크 초콜릿,자몽주스같은 '쓴맛 제품'이 뜬다고 들린다.

음식과 약재의 쓴맛만 지친 심신을 일깨우랴.인생의 쓴맛 역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만든다.

3월도 중순을 넘어섰다.

대학입시에 떨어진 뒤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광고카피가 인기지만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들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그러나 쓴맛이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것처럼 좌절의 아픔을 겪은 이들의 심지는 굳고 각오는 단단해졌을 것이다.

쓴맛은 꿀꺽 삼키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