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10일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은 특이한 소재로 관심을 끌었다.

한 패션잡지의 여기자가 남자와의 데이트 중에 갖가지 실수로 버림받는 여자들에 대한 칼럼을 쓰기 위해 직접 '급연애'를 체험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여기자 역의 케이트 허드슨에게 어려운 임무 수행을 종용하는 표독스런 편집장 역할을 맡은 배우는 비비 뉴워스.영화에서는 주로 비중이 낮은 단역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뮤지컬 '시카고'에서 여주인공 록시 역을 맡아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로드웨이의 스타다.

최근 우리나라 TV 방송에서 뮤지컬 배우 출신 연기자들의 깜짝 출연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라이브 무대에서 긴 호흡이 요구되는 뮤지컬을 경험한 배우라면 비록 낯선 얼굴이지만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과 순발력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평소에 노래,춤,연기를 함께 소화하고 있어 다른 분야에 대한 적응력도 남다르다.

최근 공중파 TV의 인기 사극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 오만석씨(사진)는 얼마 전까지 뮤지컬 무대에서 여장 남자와 꽃미남 등 다양한 역을 소화해 인기가 높았다.

남성미 넘치는 신성록씨도 곧 케이블 드라마에 진출할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 나라도 최근에는 뮤지컬 배우들이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되어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추세다.

조금만 유명해지면 너도나도 방송 출연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학로 연극 기획자들이 어렵게 발굴한 배우가 영화나 방송계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하소연은 이미 식상한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뮤지컬 제작사들도 요즘 캐스팅을 하기 위해서는 TV와 영화 제작 스케줄까지도 모두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배우와 제작자들을 나쁘게만 볼 수 없는 일이다.

화면으로 만나는 뮤지컬 배우들이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후 다시 친정으로 복귀해 티켓 파워까지 보여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연극 '친정엄마'와 '필로우맨'은 각각 고두심과 최민수라는 배우가 없었으면 성공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장의 캐스팅 담당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무대에서의 연기 패턴을 카메라 앞에서도 그대로 반복해 미스 캐스팅 논란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다른 매체에 진출해서 좋은 평가도 받지 못하고서 친정으로 돌아올 때는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갑자기 높은 개런티를 요구해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 외의 공연 장르는 계속해서 관객이 외면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무대의 질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부를 수 있는 능력부터 키우는 것이 시급한 일이고 보면 이들 배우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유연성도 필요한 때다.

지금 대학로 전체를 들썩이게 만드는 동숭아트센터의 연극 시리즈 '연극열전'의 성공도 배우 조재현이 참여해 여러 TV,영화 배우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