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달러 부족사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대형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 사태에 따른 국제 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이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과 은행들이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조선업체 등이 지난해부터 달러약세(원화강세)를 예상해 선물환을 과도하게 매도했고 은행들은 이를 유도하거나 방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예상과 달리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달러강세) 선물환을 매도했던 주체들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한꺼번에 현물청산(달러화로 되갚는 것)에 나서면서 달러수요가 급증,은행의 달러 부족을 불러왔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달러 유동성 부족이 장기화될 경우 환율상승 기대감을 증폭시켜 물가나 금리 상승을 촉발해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환율 안정에 대한 외환당국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달러부족 위기에 처한 은행

은행을 비롯해 국내 금융회사는 이제 달러를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미국 6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 사태가 직격탄을 날렸다.

국내 은행의 주된 달러 조달원이었던 미국 시장 기채나 미국계 대형 은행으로부터 차입이 완전 중단됐다.

기업들이 수출을 해서 맡기는 돈이 늘고는 있지만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급등 등으로 달러 결제금액이 커지면서 순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외국인이 올 들어 국내 주식을 13조원(약 130억달러)어치나 팔아 송금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채권마저 팔아 달러로 바꾸고 있다.

주총이 끝나는 이달 말부터는 5조원(약 50억달러)의 배당금이 외국으로 빠져나갈 예정이다.

이 모두가 달러 공급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게다가 은행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달러 차입선으로 활용해온 중국계 및 일본계와의 단기 크레디트라인(한도 신용공여)도 만만치 않다.

근근이 맞춰오던 달러 수급이 꼬이기 일보직전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은행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달러 수급이 워낙 빡빡해 여유자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현재 상황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약간의 달러 만기결제 요청에도 응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원자재 수입 차질 우려

달러 유동성 악화는 우선 기업에 대한 외화대출 위축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모 시중은행은 이달 들어서만 4000만달러 이상 외화대출을 줄였다.

은행권의 외화대출 축소는 원자재 등 설비 수입에 차질을 불러와 생산활동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원유 도입 대금으로 인해 20억달러 규모의 외화부채를 안고 있는 SK에너지 관계자는 "원유 도입 물량 중 대부분은 장기 외화부채여서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스폿시장에서 원유를 도입해 생긴 단기 외화부채(총부채의 20% 정도)는 수개월 내에 금융권의 외화대출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금융권에서 달러 부족사태가 장기화돼 외화대출을 줄이거나 중단하면 SK에너지는 현물시장에서 원유를 도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형 유화업체 관계자는 "글로벌 원자재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대부분의 나프타 공급 업자들이 달러 선금을 요구하고 있다"며 "주거래은행이 달러공급을 제때 해주지 못하면 원자재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달러 유동성 악화는 시장불안을 증폭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예컨대 달러 수요가 약간만 늘어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진우 NH투자선물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부족사태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것이란 기대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직.간접적으로 물가 불안을 가중시키고 시장 금리마저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자금부장은 "시장안정 차원에서라도 한국은행이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방향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환율안정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준동/장창민 기자 jdpowe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