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판.검사 출신의 로펌행이 잇따르면서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원과 검찰,변호사업계라는 법조3륜이 견제와 비판은커녕 결국 한통속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19일 삼성생명 서초타워빌딩 17층. 정진호 전 법무부차관이 개업 축하손님을 맞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대검찰청 강력부장 출신인 대표변호사와의 인연으로 법무법인 동인에 새롭게 둥지를 튼 것. 정 전 차관은 단독개업을 마다한 배경에 대해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로펌 같은 큰 조직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개인사무실을 여는 분들이 적지 않았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법원 검찰 고위간부 출신들의 로펌행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정동기 전 대검차장은 법무법인 바른으로, '조폭전문' 조승식 전 대검 형사부장은 법무법인 한결로 자리를 옮겼다.

병역 논란으로 검찰총장직 입성 직전에 쓴잔을 마신 안영욱 전 서울지검장은 조만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새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출신 '거물급'들의 행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범인을 쫓던 검사가 하루 아침에 낯을 바꾸어 범인을 변호해도 되느냐"는 해묵은 도덕적 해이 논란이다.

참여연대측이 2001년 7월~2006년 8월 기간 중 중대형로펌이 영입한 판.검사들을 분석한 결과 퇴직시기와 로펌 영입시기의 간격이 3개월도 안 되는 전관이 전체의 8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펌 입장에서야 거물급 전관의 영입은 사활을 걸고 경쟁할 만큼 수익과 직결되는 '사업'이다.

중형 로펌 관계자는 "부장검사 출신은 월 2000만원,검사장급의 경우 5000만~6000만원까지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관들은 몸값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폐단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변호사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인 법정 내 '로펌예우' 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는 "나중에 로펌으로 옮겨갈 것을 생각하면 재판장하는 분들이 로펌에 더 신경 쓰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로펌들이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는 이유가 '친정'에 대한 로비대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익명을 요구한 원로 법대교수는 "일본처럼 원칙은 판.검사로 정년퇴직하고 연금받는 게 맞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로펌들이 '눈독'을 들이는 대상이 전직 판.검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태평양은 유영환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7일자로 고문으로 영입했다.

이석채 전 장관에 이어 정통부 출신 장관으론 두 번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 조차도 '검증된 인물'을 찾으려면 로펌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로펌의 '덩치키우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오는 4월1일 군법무관 출신 9명 변호사가 합류하면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국내 변호사만 300명을 넘는다.

광장(178명),태평양(176명),세종(160명),화우(155명) 등도 초대형 로펌을 향해 끝 간 데 없는 '먹성'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공익활동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다.

'프로보노'('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pro bono publica의 약어.통상 무료 변론을 지칭)라는 용어가 일반에겐 아직도 낯선 이유다.

김앤장이나 태평양 등 일부 대형 로펌을 제외하곤 공익활동이 극히 부진한 실정이다.

지평의 김상준 변호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로펌이 이익창출을 외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도 "다만 로펌 운영에서 민주성을 유지하고 공익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역할도 소홀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