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첨단기술 첨단산업 얘기는 많이 하면서 왜 농업에 대해선 관심이 적은지 모르겠다."

농업단체에서 한 말이 아니다.

최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학한림원 모임에서 한 말이다.

이후 한국의 내로라하는 엔지니어,기업인들이 모여 있는 공학한림원에서는 농업관련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산업과 기술혁신을 토론하는 국제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기술,산업의 혁신과정을 진화의 관점에서 체계화한 경제학자로 유명한 넬슨이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모두들 '산업화(industrialization)'얘기는 많이 하면서 왜 '농업화(agriculturalization)'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 그가 산업화에 빗대 농업화란 조어를 들고 나온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과학기술,혁신 등이 제조업의 전유물이 아니란 얘기다.

농업혁명은 1만년 전에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역사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부의 창출에 가속도가 붙은,250년 전의 산업혁명(제조업 혁명)이다.

콘드라티에프의 50~60년 주기 장기파동도 산업혁명을 그 시발점으로 하고 있고,슘페터는 그 동력을 기술혁신에서 찾았다.

산업혁명 이후 장기파동은 철도(제2파),전기ㆍ자동차(제3파),전자ㆍ석유화학(제4파) 등으로 일어났다는 것이고 보면 장기파동설은 기본적으로 제조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파동설을 근거로 제5파로 불리는 정보통신이 얼마나 오래갈지,그 다음 파동의 주역은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들이 무성하다.

여기서 농업 얘기는 없다.

학문의 맥으로 보면 슘페터에 닿아 있는 넬슨이 농업 얘기를 꺼낸 건 그런 점에서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1만년 전 농업혁명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계속 진화해 왔고,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차세대 농업비즈니스 모델 이야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농업이란 용어만 빼면 이것이 제조업에 관한 이야기인지,서비스업에 관한 이야기인지를 구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과학기술,실용화,비즈니스,혁신, 클러스터,네트워크,창업,인수ㆍ합병,유통혁명 등이 그대로 나온다.

클라크는 산업을 1,2,3차로 분류하고,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1차에서 2차로,그리고 3차로 그 경제적 비중이 이동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농업=후진국,제조업=중진국,서비스업=선진국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중요한 것은 산업의 구조고도화다.

지금 누가 첨단농업을 주도하고 있는지,누가 첨단제조업을 쥐고 있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후진국에서도 서비스업 비중이 커질 수 있지만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다.

결국은 가치사슬의 문제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농업의 2,3차 산업화를 들고 나왔다.

늦었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농산물 가격폭등,즉 애그플레이션과 같은 가격사이클 때문에 그렇다는 게 아니다.

그것은 큰 흐름에서 보면 단편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많은 이들이 새로운 장기파동(제6파)의 주역으로 바이오를 꼽는 데 더 주목해야 한다.

농업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고,농업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논설ㆍ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