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일제 때도 '과학의 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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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올해부터 '과학의 날'을 4월19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4월은 '과학의 달'이고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다.
하지만 며칠 앞으로 다가온 4월이 과학의 달로 대접 받을지도 의문이지만,21일이 과학의 날로 남기는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과학기술부를 없앴기 때문이다.
원래 과학의 날은 1967년 4월21일 '과학기술처' 간판을 달고 그후 이를 축하하며 만든 기념일이다.
그 과학기술처가 부총리급의 과학기술부로 승격되더니 새 정부와 함께 사라져 버렸으니,그 기념일인 과학의 날을 그대로 존속시킬 수는 없어진 것 아닌가?
평생 '과학'이란 주제를 맴돌며 살아온 필자로서는 과학기술부를 없앤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지만,과학의 날만이라도 날짜를 4월19일로 바꿔 유지하고 싶어서 제안한다.
애초에 과학기술처 간판 단 날을 기념일로 정한 것은 짧은 소견이었다.
우리 역사에는 과학기술에 헌신한 선조들의 간절한 노력이 기록돼 남아 있으니 그런 날을 골랐어야 옳았다.
그 날은 바로 1934년 4월19일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당대 지식층이 총망라되다시피 해 '과학 데이'를 만들어 행사를 시작했고,그후 여러 해 계속됐다.
당시 조선인 주도의 3대 신문이 모두 나서서 표어를 만들고,매일같이 과학 특집기사를 실으며,과학기술의 진흥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민족의 역량을 기를 수 없다는 뜻을 밑에 깔고 있던,반쯤은 '감춰진 민족운동'이었다.
그걸 눈치 못 챌 일제도 아니었으니,그 운동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예를 들면 30년대 '과학 데이' 행사에는 수십 대의 자동차가 광화문거리를 줄지어 행진했고,그 위에서 학생들이 '과학의 노래'(김억 작사,홍난파 작곡)를 불렀다.
라디오 방송 특집,대중 강연과 활동사진 상영 등을 통해 과학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 시기 과학 대중화에 열성이던 김용관(1897~1967) 등이 앞장섰지만,이 행사를 주관한 '과학지식보급회'에는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나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그리고 송진우,이종린,최규동,조동식,현상윤,이하윤,윤일선 등 당대 명사가 모두 참가했고,여운형은 아예 과학강연을 맡았다.
회장은 윤치호,부회장은 이인이었고….당시는 과학의 황무지였다.
과학자랄 만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과학기술을 진흥해야 한다고 떨쳐 일어선 이들이 교육자,문필가,언론인,경제인 등 당대의 지도적 인물이었다.
그때 4월19일이 '과학 데이'로 선정된 것은 그날이 바로 찰스 다윈(1809~1882)의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유명한 과학기술자는 단연 에디슨과 다윈이었는데,1882년 4월19일에 죽은 진화론의 제창자 다윈의 50주기 행사가 1932년 4월19일 세계 각국에서 크게 벌어졌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압제 치하에서의 '과학 데이'가 생겨났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과학기술처가 생긴 것은 1967년 4월21일이었고,그 이듬해 간판 달던 날을 기념해 '과학의 날'은 태어났다.
그러니 작년에 제40회를 기념하고 '과학의 날'은 수명을 다한 셈이다.
아마 당국자들도 올해 '과학의 달'과 '과학의 날'을 어쩔 것인가 고민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올해 '과학의 날'로 73년 전의 '과학 데이' 4월19일을 제안한다.
75주년 '과학 데이'를 '과학의 날'로 이름만 바꿔 계속 기념해 나가면 될 것이다.
엊그제 나온 각 정당의 비례대표 명단을 보니 과학기술계 대표는 하나도 넣어주지 않는 고약한 나라가 돼 있지만,그래도 우리는 무엇인가 계승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은가? 궁지로 몰린 '과학의 날'을 이렇게 이어갔으면 좋겠다.
올해부터 '과학의 날'을 4월19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4월은 '과학의 달'이고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다.
하지만 며칠 앞으로 다가온 4월이 과학의 달로 대접 받을지도 의문이지만,21일이 과학의 날로 남기는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과학기술부를 없앴기 때문이다.
원래 과학의 날은 1967년 4월21일 '과학기술처' 간판을 달고 그후 이를 축하하며 만든 기념일이다.
그 과학기술처가 부총리급의 과학기술부로 승격되더니 새 정부와 함께 사라져 버렸으니,그 기념일인 과학의 날을 그대로 존속시킬 수는 없어진 것 아닌가?
평생 '과학'이란 주제를 맴돌며 살아온 필자로서는 과학기술부를 없앤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지만,과학의 날만이라도 날짜를 4월19일로 바꿔 유지하고 싶어서 제안한다.
애초에 과학기술처 간판 단 날을 기념일로 정한 것은 짧은 소견이었다.
우리 역사에는 과학기술에 헌신한 선조들의 간절한 노력이 기록돼 남아 있으니 그런 날을 골랐어야 옳았다.
그 날은 바로 1934년 4월19일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당대 지식층이 총망라되다시피 해 '과학 데이'를 만들어 행사를 시작했고,그후 여러 해 계속됐다.
당시 조선인 주도의 3대 신문이 모두 나서서 표어를 만들고,매일같이 과학 특집기사를 실으며,과학기술의 진흥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민족의 역량을 기를 수 없다는 뜻을 밑에 깔고 있던,반쯤은 '감춰진 민족운동'이었다.
그걸 눈치 못 챌 일제도 아니었으니,그 운동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예를 들면 30년대 '과학 데이' 행사에는 수십 대의 자동차가 광화문거리를 줄지어 행진했고,그 위에서 학생들이 '과학의 노래'(김억 작사,홍난파 작곡)를 불렀다.
라디오 방송 특집,대중 강연과 활동사진 상영 등을 통해 과학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 시기 과학 대중화에 열성이던 김용관(1897~1967) 등이 앞장섰지만,이 행사를 주관한 '과학지식보급회'에는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나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그리고 송진우,이종린,최규동,조동식,현상윤,이하윤,윤일선 등 당대 명사가 모두 참가했고,여운형은 아예 과학강연을 맡았다.
회장은 윤치호,부회장은 이인이었고….당시는 과학의 황무지였다.
과학자랄 만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과학기술을 진흥해야 한다고 떨쳐 일어선 이들이 교육자,문필가,언론인,경제인 등 당대의 지도적 인물이었다.
그때 4월19일이 '과학 데이'로 선정된 것은 그날이 바로 찰스 다윈(1809~1882)의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유명한 과학기술자는 단연 에디슨과 다윈이었는데,1882년 4월19일에 죽은 진화론의 제창자 다윈의 50주기 행사가 1932년 4월19일 세계 각국에서 크게 벌어졌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압제 치하에서의 '과학 데이'가 생겨났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과학기술처가 생긴 것은 1967년 4월21일이었고,그 이듬해 간판 달던 날을 기념해 '과학의 날'은 태어났다.
그러니 작년에 제40회를 기념하고 '과학의 날'은 수명을 다한 셈이다.
아마 당국자들도 올해 '과학의 달'과 '과학의 날'을 어쩔 것인가 고민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올해 '과학의 날'로 73년 전의 '과학 데이' 4월19일을 제안한다.
75주년 '과학 데이'를 '과학의 날'로 이름만 바꿔 계속 기념해 나가면 될 것이다.
엊그제 나온 각 정당의 비례대표 명단을 보니 과학기술계 대표는 하나도 넣어주지 않는 고약한 나라가 돼 있지만,그래도 우리는 무엇인가 계승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은가? 궁지로 몰린 '과학의 날'을 이렇게 이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