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들이 말하면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죠…."(외환시장 관계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최고책임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환율과 금리 발언을 쏟아내면서 환율 및 금리가 널뛰기하고 있다.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두 기관이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면서 그 때마다 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강만수 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은 총재가 만나 정책협조 의지를 다진 지 20일도 지나지 않았다"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잇따라 쏟아내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말말말…'

이성태 한은 총재의 '환율 천장' 발언으로 원ㆍ달러 환율이 20원 넘게 급락한 지 하루 만인 26일.이번에는 최중경 재정부 차관이 '입'을 뗐다.

최 차관은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 직후 "환율 급등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급락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전날 환율 급락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

강만수 장관도 전날 외부강연에서 "경상수지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데 (환율이) 이렇게 운영돼서는 곤란하다"며 '환율 상승을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외환시장 개장 직전에 나온 재정부 고위당국자들의 이 같은 발언으로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개장 직후 982원(5원70전 상승)대로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인 주식 순매수로 환율 오름세가 다소 힘을 잃자 실제 시장개입까지 이뤄졌다.

이날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수 물량은 약 8억달러.결국 환율은 전날보다 10원50전 오른 986원80전에 거래를 마쳤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가뜩이나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당국자들이 서로 다른 발언을 쏟아내면서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리도 널뛰기를 하긴 마찬가지다.

강 장관은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차가 2.75%포인트인데 뭐든지 과유불급"(3월25일 외부강연)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다 한 발 더 나아가 "통화정책에는 재정부 장관이 금융통화위원회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여차하면 금리정책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경우 금통위 독자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25일 외부강연에서 "물가와 경상수지 쪽에서 보면 금리를 올리라는 신호,경기 쪽에서 보면 그냥 두거나 내리라는 신호"라며 금리 동결을 고수하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는 채권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강 장관 발언으로 '정부는 역시 금리 인하를 희망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산되는가 하면 이 총재의 물가 발언으로 그런 기대감이 사라지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당국자들의 서로 다른 발언이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부-한은 '전면전' 양상

환율과 금리뿐 아니다.

재정부와 한은은 물가와 성장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양보 없는 '기싸움'을 하고 있다.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흡사 '전면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한때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더 시급해진 상황"(3월22일 언론 인터뷰)이라고 밝히면서 물가안정을 중시해온 한은 쪽이 승기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강 장관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지난 25일 외부강연에서 "대통령께서 '물가를 성장보다 우선하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한 것.반면 이 총재는 "중앙은행 사람들이 물가만 보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중앙은행으로선 물가안정이 제일 중요한 지표"라고 말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민간연구소에서 5% 성장이 힘들다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재정부 입장에선 마음이 급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억지로 뭔가 부양한다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4월이 갈등 '정점'될 듯

재정부와 한은의 갈등은 특히 오는 4월이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4월9일 총선과 4월20일 금융통화위원 교체 과정에서 경제정책 운용방향에 대한 갈등이 표면화될 수 있어서다.

금융통화위원의 경우 현재 7명 중 강문수(재정부 추천)ㆍ이성남(금융위 추천)ㆍ이덕훈(한은 추천) 위원 등 3명이 교체대상이다.

관건은 한은 추천 몫에 대해 이 총재가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 여부다.

재정경제부 시절에도 한은이 추천한 인사를 재경부가 반대해 추천이 무산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천권을 행사한다면 금통위 내에서 한은 쪽 인사(이 총재,이승일 부총재,심훈 위원+1명)가 4명으로 정부 쪽 인사보다 많아 향후 금리정책에서 한은의 입김이 반영될 여지가 높다.

반면 한은 총재가 추천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정부 쪽 입장이 반영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한은 노조는 이날 강 장관의 금리정책 개입 등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은 노조는 "강 장관은 통화정책에 대한 거부권까지 언급했다"며 "정부는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고 공정한 금통위원 인사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강 장관이 강조했듯 한은의 독립은 정부 내 독립"이라며 "노조가 나설 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