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2개 생활필수품을 지정해 집중 관리에 들어감에 따라 그동안 가격 인상을 미뤘던 생필품 제조업체들이 고민에 빠졌다.

경쟁 업체들이 다 올렸고 원가 부담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정부의 서슬이 퍼런 상황이어서 당장 가격을 올리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라면 업계에서는 농심이 대통령 취임 전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이달 들어 줄줄이 가격을 올렸다.

한국야쿠르트도 다음 달 1일부터 라면값 인상을 결정했지만 정부의 생필품 관리 방안이 발표돼 미묘한 입장에 처했다.

관계자는 "다른 업체들이 다 올리는데도 원가 상승 부담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며 버텼는데 이젠 정부가 물가관리를 강화하는 와중에 인상하는 꼴이어서 난처하다"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는 '일품 해물라면'(700원→800원),'팔도 비빔면'(700원→800원),'왕뚜껑'(900원→1000원) 등을 100원씩 올릴 예정이다.

세탁.주방세제 업체들도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인 CJ라이온과 옥시는 이미 이달 초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평균 10% 인상한 반면 국내 업체인 LG생활건강과 애경은 가격을 못올렸다.

세제는 가격에 민감해 쉽게 올리기 힘든 제품군이지만 지난해 이후 주원료인 계면활성제 소다회 등의 가격이 최고 2배까지 뛰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업계의 항변이다.

이에 따라 애경은 다음 달 소매점부터 단계적으로 제품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다.

그러나 '테크' '슈퍼타이' '자연퐁' 등을 생산하는 LG생활건강은 가격 인상을 유보했다.

회사 관계자는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시기였는데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인상안을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유 업계 1위인 서울우유도 제품값 인상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매일우유가 지난달 'ESL 우유' 가격을 7%가량 올렸고 남양유업도 지난해 말 '맛있는 우유 GT'(1ℓ)의 가격을 인상했다.

서울우유는 우유값을 올린다는 방침만 정해 놓고 사실상 타이밍을 놓친 셈이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고심하고 있으나 인상 시점과 인상률은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양산빵 업체의 경우 샤니,삼립,기린 등 업계 빅3가 이달 중순까지 가격 인상을 마무리지었다.

업계 4위인 서울식품은 뒤늦게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찜찜한 상황이다.

또 업계 선두인 샤니가 식사 대용인 식빵 가격은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식빵 비중이 매출의 절반인 기린 등은 가격을 올릴 수도 없어 발만 구르고 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