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소설가>

안양 초등학생 유괴 살해사건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사형제 존폐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비롯해 전 프로야구 선수의 네 모녀 살해사건 등 날이 갈수록 극악한 범죄가 늘어나니 국민 정서가 격앙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인터넷에서는 8 대 2나 7 대 3 정도로 사형제 존속 의견이 압도적이라고 하고,여론조사에서는 사형제 존속에 대한 찬성 의견이 57%,반대 의견이 22.2%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2006년에 존속이 45.1%,폐지가 33.8%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가상 시나리오의 악몽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저런 범죄가 나에게 혹은 나의 가정에 혹은 나의 자식에게 생기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형제 찬성 여론이 비등해지는 것도 얼마든지 수긍하고 이해가 갈 만하다.

만약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사형제도를 찬성한다면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그것은 마땅히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제도적 장치로 박탈하는 문제는 생각처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국민감정이 특정한 사건에 자극받아 고조돼 있을 때 기회를 기다린 듯 나서는 법무부의 태도는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존폐 여부를 떠나 제도를 결정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여론이 2년 전보다 12%나 높아진 민감한 시기에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나서는 게 마치 시류(時流)에 편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극악무도한 범죄예방의 효과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반면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사형제도가 범죄예방 효과와 상관없으며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박탈하는 일은 어떤 측면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제도 자체의 존폐에만 급급하면 근원적인 문제가 간과될 수 있다.

그래서 한 가지 덧붙여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사람이란 과연 무엇인가,그리고 범죄는 왜 저지르게 되는가 하는 과학적 측면에서의 입장이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보고한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게 인간 자신이 아니라는 실험결과에 근거한 주장이다.

그런 관점에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 관점과 어긋난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범죄자 자신이 아니라 범죄에 이르게 된 생리적,유전적,환경적 요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입한 자동차에 이상이 있으면 리콜을 하지만 사람이 유전적 결함을 지니고 태어나 연쇄살인범이나 어린이 유괴살해범이 되는 경우에 그의 유전자는 누구에게 리콜할 것인가.

사형은 리콜 대신 제품을 폐기처분하는 제도라는 의미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 세상에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가 있으므로 세상이 있고 우주가 있는 것이다.

'나'가 소멸하면 모든 것이 소멸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의 중심이다.

여기에 감정이 개입하거나 특정한 입장이 개재돼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고 생살여탈권을 좌우할 수는 없다.

국민 여론을 앞세워 제도적 결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는 역기능이 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형제도는 특정한 인물에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왕 논란이 된 사형제도가 우리 사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