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월요 인터뷰] 이석연은 … "法學 안 했으면 고고미술학자 됐을것"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석연 법제처장은 '거침없이 말하는 인물'로 유명하다.변호사 출신이니 말을 오죽 말을 잘 할까마는 이 처장의 경우는 '원칙이 분명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확신에서 나오는 당당함이다.

    그는 스스로를 '헌법 정신에 입각해서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가진 신념이 헌법 정신에 유래한다는 뜻이다.

    90년대 초중반엔 사회주의자,운동권이란 말까지 들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엔 뉴라이트 운동을 하면서 수구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누구는 나를 좌로,혹자는 우로 몰아세우지만 저는 항상 헌법정신에 입각해 일관된 주장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법학을 하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을 것 같냐고 물어보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아마 고고미술사학을 했을 겁니다.징기스칸이나 알렉산더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년이후엔) 고고학자가 되서 그런 것을 조사하고 탐구해보고 싶습니다.지금도 시간이 날 경우 가끔 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을 하곤 합니다."

    '길 나지 않은 산길을 혼자 뚫고 간다'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다운 대답이다.

    전북 정읍에서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 처장은 중학교 졸업 6개월 만인 1971년 7월 대입검정고시는 물론 그해 예비고사까지 합격했다.

    검정고시 합격 후 대학 진학을 미루고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1년8개월간 300여권의 책을 독파했다.

    그때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책 읽기,글쓰기,암기력에는 자신있다고 하는 그의 실력은 이때 닦여진 것이다.

    특히 수학의 미ㆍ적분이 이해가 안될 경우 통째로 외워 시험을 치뤘다고 한다.

    74년 전북대 법학과에 입학,졸업 다음해인 7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후 6년간 법제처 사무관.법제관으로 재직하며 서울대 법학과 대학원을 다녔고 85년에는 사법시험(27회)에 합격했다.

    89년 첫 출범한 헌법재판소 연구관직에 특채된 그는 94년 5월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때부터 헌법재판소와 관련한 소송을 190여건 제기했다.

    이 중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에 의해 만든 선거구획정 법안과 군 가산점 제도에 관한 법,재외동포 차별법 등 40여건의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냈다.

    어떤 역할,어떤 처지에 있던지 그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헌법 정신'이었다.

    그가 보기에 헌법 정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기본권 존중을 근본으로 한 국민 통합의 기본이다.

    이 처장은 부인 이정숙(50세)씨와의 사이에 근평,근우,근경 등 3남을 두고 있다.

    평생 공부를 해 왔지만 앞으로도 그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그는 이날도 '내 인생에 2차는 없다'며 저녁 식사만 마치고 귀가해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약력
    △1954년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학교 법학과,서울대학교 법학 박사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1985년 제27회 사법고시 합격
    △법제처 사무관ㆍ법제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ㆍ감찰위원
    △전북대 초빙교수
    △경실련 사무총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
    △선진화국민회의 상임공동위원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 대표
    △동국대 법대 겸임교수

    ADVERTISEMENT

    1. 1

      명진 스님, '조계종 비판' 후 승적 박탈…法 "징계 무효"

      자승 총무원장 시절인 2017년 대한불교조계종 지도부를 비판하다 승적을 박탈당한 명진 스님이 항소심에서도 징계 무효 판결을 받았다.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5-2부(신용호 이병희 김상우 고법판사)는 지난 16일 명진 스님이 조계종을 상대로 낸 징계 무효 확인 등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동일하게 제적 징계 처분은 무효로 보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다만 명진 스님이 요구한 위자료 3억원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명진 스님은 지난 2016년 12월 TBS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템플스테이나 문화재 관리 비용이 총무원장의 통치 자금처럼 변했다고 주장하는 등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자승 스님을 비판했다.조계종 내 수사기관 역할을 하는 호법부는 명진 스님의 비판을 '근거 없는 명예 실추' 발언으로 해석해 제적 의견을 제시했다. 명진 스님이 심리 출석 요구에 불응하면서 2017년 4월5일 초심호계원에서 최종 제적 처분이 내려졌다.이후 명진 스님은 지난 2023년 조계종을 상대로 '징계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동시에 위자료 3억원을 청구했다. 지난해 6월 1심에서 징계 8년 만에 무효 판결을 받았다.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2. 2

      "피 뽑고라도 먹겠다"…점심시간 헌혈의집 줄 세운 '두쫀쿠'

      겨울철 혈액 수급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남혈액원이 헌혈 기념품으로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를 제공한 이후 도내 헌혈자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집계가 나왔다.31일 경남혈액원에 따르면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일평균 헌혈 실적이 264건에서 539건으로 크게 늘었다. 해당 기간 동안 도내 6개 헌혈의집에서는 헌혈자에게 두쫀쿠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펼쳤다.특히 창원 센터는 69건에서 143건으로 증가했고, 마산 센터와 김해 센터도 각각 44건에서 113건, 53건에서 112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진해 센터와 진주 센터 역시 각각 43건에서 70건, 48건에서 78건으로 늘어났다. 창원 용지로 센터도 7건에서 23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이번 행사에서 경남혈액원이 준비한 두쫀쿠는 모두 500개였다. 센터마다 선착순 100명에게 한 개씩 제공됐는데, 대부분 점심시간을 전후로 빠르게 소진됐다. 하루 헌혈자도 전체적으로 평균 2배 넘게 늘었고, 일부 센터는 헌혈 참여가 평소의 3배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경남 도내 혈액 보유량은 지난 9일 기준 3.3일분이었으나, 두쫀쿠 증정 이벤트 종료 다음 날인 30일 0시 기준 4.8일분까지 증가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적정 기준일인 5일보다 적다는 점에서 경남혈액원은 혈액 확보를 위한 이벤트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경남지역 뿐 아니라 대한적집자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서 두쫀쿠를 내걸고 헌혈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두쫀쿠'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헌혈의집에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전국 혈액 보유량(적혈구제제)은 2만1142유닛이다. 1일 소요량이 5022유닛인 것을 고려

    3. 3

      '용두사미' 특검...만능론 벗어나야 [현장에서]

       “특검의 수사 기한과 권한을 고려하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결과입니다.”검찰에 오래 몸담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을 수사한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제기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여론조사 무상 수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 가운데 앞의 두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접하고 이같이 말했다. 법원이 특검팀 구형(징역 15년, 벌금 20억원, 추징금 9억4800여만원)에 크게 못 미치는 징역 1년 8개월과 추징금 1281만5000원을 선고한 건 수사·기소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무소불위’ 특검이 180일간 수사한 결과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특히 특검이 ‘작심 기소’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여론조사 무상 수수 의혹에 무죄를 선고한 점이 논란을 계속 키우고 있다. 이 사건은 특검의 ‘1호 사건’으로 민중기 특검이 수사 성과를 발표한 지난달 직접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고 밝히며 대표 성과로 꼽은 사안이다. 이들 사건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서울남부지검 등에서 진행되던 수사를 넘겨받아 방대한 수사 기록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범죄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풍부하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이들 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단은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역사적으로 실패한 특검으로 꼽히는 사례와 견줘도 이번 선고 결과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2013년 전직 건설업자가 검사들과 부적절한 스폰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수사한 ‘스폰서 검사 특검’은 핵심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이번 특검처럼 ‘용두사미’라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검찰 출신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