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미스터 쓴소리' 이석연 법제처장..."법령 둘러싼 부처간 갈등 적극 조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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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소송 전문 변호사'이석연 변호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엔 '법제처장 이석연'으로서다.
이 처장은 지난 20일 취임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 논리로 집권했지만 한나라당 논리로 통치할 수 없다" "(참여정부때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사퇴 문제는 본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라는 등 여권에 쓴 소리를 쏟아냈다. 현 정부 고위직 인사로는 처음이었다. 여기저기서 '역시 이석연'이란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이 처장은 지난 27일 대통령 업무보고때는 "기업활동을 위축하는 세무조사 연장을 금지하겠다." "법령외에도 훈령이나 예규형태로 만들어지는 규제들을 사전심사하겠다."며 그간 법제처와 확연히 구별되는 업무추진방향을 제시했다.
'헌법 지킴이''미스터 쓴소리''딸깍발이'로 이름난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정부로 들어 왔고,앞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지난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15층 법제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1시간을 예정했지만 그는 말꼬리를 놓지 않았다.
인터뷰는 30분 더 연장됐다.
체크무늬 콤비를 입은 이 처장은 하얗게 샌 머리에 약간 피곤한 안색이었으나,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엔 힘이 넘쳐났다.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드린다. 벌써부터 '역시 이석연'이란 얘기가 들린다.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법제처에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내가 공무원으로 처음 일한 부서가 법제처다.
친정이라고 할 수 있고,.. 1989년에 나왔으니까 19년 만이다.
법제처 와서 보니 할 일이 엄청 많다.
그냥 가만히 있으려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리가 여기다.
밖에 있을 때는 위헌소송을 많이 냈다.
그러나 이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위헌법률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하고 통제하는 일이 내 임무다.
어떤 경우에도 위헌적인 법률을 정략적으로 만드는 것,헌법의 정신을 무시하고 집행하다가 국민분열 현상을 일으키는 법이 안나오도록 사전에 거르겠다.
또 법제처장으로서 '선별적 차별적 법 집행 하지 말자'는 원칙을 실현하겠다.
재수없으면 걸리고 아니면 말고...이런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법제처의 위상이 높아질 것 같다.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뜻이다.
사실 그동안 법제처는 법령 심사 통과 부처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법제처는 국정을 전체적으로,거시적으로 보면서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정책을 지원해야 한다.
단순 법령 통과부처가 아니라 법령을 둘러싼 부처간의 이해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각 부처 편의대로 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하는 일을 하겠다.
그동안 규제개혁위원회가 있었지만 사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별로 없었다.
국민들이 법령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제대로 역할을 하겠다."
-현 정부의 주요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법제처는 이를 어떻게 뒷받침할 생각인가.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이제 국가가 선진으로 나가는 틀이 마련되야 한다.
나도 여기서 고민을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때는 국민 분열,편가르기가 너무 많았다.
새 정부에서는 통합의 리더십 통합의 정책의 중요하다.
여기의 정점에는 헌법적 가치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얘기지만 이것을 구체화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편의를 제공해보겠다.
여기에는 어떤 논리도 설 수 없다.
사례 위주로 하고 필요없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폐지하겠다.
국민들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은 맡긴다는 생각이다.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헌법정신이 아니다.
어느 정부든지 의욕이 앞서서 다 자기가 하려고 하는데 결코 맞지 않다."
-국민의 입장에 선다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가.
"대통령도 예를 드신 내용이지만 국민투표법을 보면 '인육으로 오손된 투표용지'라는 말이 있다.
'도장밥(인주)가 묻은 투표용지'란 뜻인데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아주 끔찍한 연상을 하게 끔 한다.(좌중 웃음).
또 주민등록번호로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모든 운전자에게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니게 한다.
또 국세청 내규는 기업들의 세무조사 기한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조사를 연장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법령들이 다 법제처가 개선해야 될 사항들이다.
이런 것을 따져보면 수백개는 된다."
-최근 '한나라당 논리로 집권했지만 한나라당 논리로만 통치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한나라당 주장만 계속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나 계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2003년 대통령 탄핵재판시 헌법재판소에서 발표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즉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통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적인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헌법 원리다.
국민들도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런 점을 감안해 대통령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거침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돼 왔는데.
"내가 원칙을 말하면 너무 돌출행동 아니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나는 비판을 하면서 대안을 제시했고 원칙대로 행동했다.
1994년 변호사 개업하고 그 당시 분위기에서는 진보적인 주장들을 많이 했다.
그때는 나를 좌파라고 비판하다가 지금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보수주의자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한쪽으로 편향돼 있는 것 같다."
-변호사 시절 무려 190여건에 달하는 위헌소송을 한 것으로 아는데,그 중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1995년 선거구 획정 위헌 결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인구 대비 국회의원 비율을 보면 장흥은 4만명에 1명,강남에서는 28만명에 1명이었다.
투표가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때 선거를 2개월 남기고 위헌결정 나면서 선거구가 조정됐다.
그 동안 190개 정도 위헌법률 관련 소송을 해서 40∼50개 정도 위헌결정을 받아냈다.
원래 헌재의 인용건은 1∼2%다.
저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헌법을 계속 강조하시는데 헌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헌법의 가치가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헌법재판소에서 6년동안 헌법연구관으로 일하면서다.
이때 우리 사회에 위헌적인 법률이나 제도 등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헌법은 명목 규범에 불과했었다.
그 이후 모든 기준점은 헌법정신이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너무나 다양한 가치관이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는 헌법이다.
이런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 사회 통합의 정신은¡@건전한 좌·우나 보수·진보 논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큰 논의의 틀은 헌법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법치주의 원리,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국민기본권 존중을 뛰어넘는 논쟁은 안된다.
일부에서는 이런 논쟁을 하면서 이미 끝난 옛 사회주의를 그리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은 맞지 않는다."
-정치에는 생각이 없나.
"전혀 그럴 생각 없다.
전문 지식을 활용해서 평소 생각했던 헌법적 가치 구현하겠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만들때 나를 발기인으로 넣고 수도권 공천에도 포함하려고 했다.
그때 내가 미국에 있었는데,내가 직접 전화해서 빼달라고 했다.
정동영 천정배 유선호 신기남 등이 그 당시 정치에 입문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이후 이회창 총재도 제안했었고 한나라당에서는 공천심사위원장(김문수 의원)도 제안을 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국회에 들어가면 내가 수 많은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 되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내가 자신의 역할을 소신껏 할 수 있다.
정치인이 되지 않고서도 내가 우리 사회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담=김형배 정치부장
정리=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이 처장은 지난 20일 취임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 논리로 집권했지만 한나라당 논리로 통치할 수 없다" "(참여정부때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사퇴 문제는 본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라는 등 여권에 쓴 소리를 쏟아냈다. 현 정부 고위직 인사로는 처음이었다. 여기저기서 '역시 이석연'이란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이 처장은 지난 27일 대통령 업무보고때는 "기업활동을 위축하는 세무조사 연장을 금지하겠다." "법령외에도 훈령이나 예규형태로 만들어지는 규제들을 사전심사하겠다."며 그간 법제처와 확연히 구별되는 업무추진방향을 제시했다.
'헌법 지킴이''미스터 쓴소리''딸깍발이'로 이름난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정부로 들어 왔고,앞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지난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15층 법제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1시간을 예정했지만 그는 말꼬리를 놓지 않았다.
인터뷰는 30분 더 연장됐다.
체크무늬 콤비를 입은 이 처장은 하얗게 샌 머리에 약간 피곤한 안색이었으나,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엔 힘이 넘쳐났다.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드린다. 벌써부터 '역시 이석연'이란 얘기가 들린다.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법제처에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내가 공무원으로 처음 일한 부서가 법제처다.
친정이라고 할 수 있고,.. 1989년에 나왔으니까 19년 만이다.
법제처 와서 보니 할 일이 엄청 많다.
그냥 가만히 있으려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리가 여기다.
밖에 있을 때는 위헌소송을 많이 냈다.
그러나 이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위헌법률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하고 통제하는 일이 내 임무다.
어떤 경우에도 위헌적인 법률을 정략적으로 만드는 것,헌법의 정신을 무시하고 집행하다가 국민분열 현상을 일으키는 법이 안나오도록 사전에 거르겠다.
또 법제처장으로서 '선별적 차별적 법 집행 하지 말자'는 원칙을 실현하겠다.
재수없으면 걸리고 아니면 말고...이런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법제처의 위상이 높아질 것 같다.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뜻이다.
사실 그동안 법제처는 법령 심사 통과 부처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법제처는 국정을 전체적으로,거시적으로 보면서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정책을 지원해야 한다.
단순 법령 통과부처가 아니라 법령을 둘러싼 부처간의 이해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각 부처 편의대로 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하는 일을 하겠다.
그동안 규제개혁위원회가 있었지만 사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별로 없었다.
국민들이 법령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제대로 역할을 하겠다."
-현 정부의 주요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법제처는 이를 어떻게 뒷받침할 생각인가.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이제 국가가 선진으로 나가는 틀이 마련되야 한다.
나도 여기서 고민을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때는 국민 분열,편가르기가 너무 많았다.
새 정부에서는 통합의 리더십 통합의 정책의 중요하다.
여기의 정점에는 헌법적 가치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얘기지만 이것을 구체화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편의를 제공해보겠다.
여기에는 어떤 논리도 설 수 없다.
사례 위주로 하고 필요없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폐지하겠다.
국민들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은 맡긴다는 생각이다.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헌법정신이 아니다.
어느 정부든지 의욕이 앞서서 다 자기가 하려고 하는데 결코 맞지 않다."
-국민의 입장에 선다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가.
"대통령도 예를 드신 내용이지만 국민투표법을 보면 '인육으로 오손된 투표용지'라는 말이 있다.
'도장밥(인주)가 묻은 투표용지'란 뜻인데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아주 끔찍한 연상을 하게 끔 한다.(좌중 웃음).
또 주민등록번호로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모든 운전자에게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니게 한다.
또 국세청 내규는 기업들의 세무조사 기한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조사를 연장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법령들이 다 법제처가 개선해야 될 사항들이다.
이런 것을 따져보면 수백개는 된다."
-최근 '한나라당 논리로 집권했지만 한나라당 논리로만 통치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한나라당 주장만 계속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나 계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2003년 대통령 탄핵재판시 헌법재판소에서 발표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즉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통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적인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헌법 원리다.
국민들도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런 점을 감안해 대통령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거침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돼 왔는데.
"내가 원칙을 말하면 너무 돌출행동 아니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나는 비판을 하면서 대안을 제시했고 원칙대로 행동했다.
1994년 변호사 개업하고 그 당시 분위기에서는 진보적인 주장들을 많이 했다.
그때는 나를 좌파라고 비판하다가 지금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보수주의자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한쪽으로 편향돼 있는 것 같다."
-변호사 시절 무려 190여건에 달하는 위헌소송을 한 것으로 아는데,그 중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1995년 선거구 획정 위헌 결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인구 대비 국회의원 비율을 보면 장흥은 4만명에 1명,강남에서는 28만명에 1명이었다.
투표가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때 선거를 2개월 남기고 위헌결정 나면서 선거구가 조정됐다.
그 동안 190개 정도 위헌법률 관련 소송을 해서 40∼50개 정도 위헌결정을 받아냈다.
원래 헌재의 인용건은 1∼2%다.
저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헌법을 계속 강조하시는데 헌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헌법의 가치가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헌법재판소에서 6년동안 헌법연구관으로 일하면서다.
이때 우리 사회에 위헌적인 법률이나 제도 등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헌법은 명목 규범에 불과했었다.
그 이후 모든 기준점은 헌법정신이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너무나 다양한 가치관이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는 헌법이다.
이런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 사회 통합의 정신은¡@건전한 좌·우나 보수·진보 논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큰 논의의 틀은 헌법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법치주의 원리,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국민기본권 존중을 뛰어넘는 논쟁은 안된다.
일부에서는 이런 논쟁을 하면서 이미 끝난 옛 사회주의를 그리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은 맞지 않는다."
-정치에는 생각이 없나.
"전혀 그럴 생각 없다.
전문 지식을 활용해서 평소 생각했던 헌법적 가치 구현하겠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만들때 나를 발기인으로 넣고 수도권 공천에도 포함하려고 했다.
그때 내가 미국에 있었는데,내가 직접 전화해서 빼달라고 했다.
정동영 천정배 유선호 신기남 등이 그 당시 정치에 입문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이후 이회창 총재도 제안했었고 한나라당에서는 공천심사위원장(김문수 의원)도 제안을 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국회에 들어가면 내가 수 많은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 되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내가 자신의 역할을 소신껏 할 수 있다.
정치인이 되지 않고서도 내가 우리 사회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담=김형배 정치부장
정리=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