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 <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화가 www.choisunho.com >

몇년 전만 해도 '봄맞이 대청소 주간'이란 플래카드를 심심찮게 보았는데,언제부터인가 도시가 깨끗해지고 거리에 쓰레기도 눈에 띄게 줄었다.그만큼 먹고 살기가 좋아지니 주변을 돌아볼 시간과 여유가 생긴 것이다.그러나 아직도 눈뜨고 보면 마음에 걸리는 일이 많다.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집어 던지거나 아무데나 휴지를 버리는 사람들은 세상이 쓰레기통으로 보이는 걸까.이런 일이 어디 길거리의 문제만이겠는가.내 점포만 눈에 띄면 된다는 식의 자극적이고 무분별한 간판은 해답이 없다.정말 컴퓨터 '휴지통'을 클릭하듯 확 버리고 싶다.이메일이 가득 차면 경고문구가 뜨면서 휴지통 비우기를 권한다.'휴지통을 비우시겠습니까'란 문구가 뜰 때 '예'를 누르면 양변기 물 빠지듯 '쉭'소리를 내며 휴지통이 비워지고서야 비로소 용량이 넉넉해진다.

나도 마음의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화실 청소다.겨우내 묵혀 두었던 화분을 들어내고,무더기 무더기 쌓아놓은 캔버스와 그림들을 정리하며 자리를 잡았다.캐비닛 속에 시간이 지난 순서로 올려놓고 포개놓은 사진이며 하나둘 집어넣은 잡동사니를 들어내니 한 짐이다.쓸어도 쓸어도 먼지는 나오고,버려도 버려도 버릴 건 많다.내가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안고 살았나 싶어 슬며시 지난날의 욕심에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그래 눈감고 확 버리자! 속이 후련하다.비워야 차고 버려야 새로 들어온다.샘물은 쓰면 쓸수록 맑아지고 칼은 갈수록 날카로워진다.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비울수록 새 힘이 솟는다.역설적이지만 지식도 버렸을 때 비로소 자기의 세계가 열린다.마음을 비웠을 때 큰 일을 한다.

문화의 고급은 정리정돈에 있다.자연은 언뜻 보면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질서와 절제가 있다.꽃은 제철이 되어야 피고 열매 맺으며,나무는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자신을 비움으로써 새봄을 기약한다.모두 자기의 생존본능에 맞추어 영역을 갖고,비우며 질서를 만든다.인간사도 마찬가지다.학문의 완성은 잡다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자기 사상을 몇 줄로 요약하는 일이다.몇 페이지의 삶과 몇 개의 살림이 살아온 전부인 것을 모두들 잊고 산다.삶의 무게가 버겁다면 과감히 '휴지통 비우기'를 하자.주변의 관계를 덜어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면 얼마나 세상이 가벼워지는지 금방 알 것이다.자신이 곧 세상이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자기의 짐은 결국 자신이 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