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지난 대선을 거치고 오는 9일 치를 총선을 앞두면서 '폴리페서'라는 신조어가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를 합성해 만든 용어다.

지난 정부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적잖은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에 새로 짜이는 정치판에서는 교수 위치가 별로일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역시 역사의 무게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유교국가 한국의 지배계급이었던 사대부(士大夫)는 물러나면 선비가 되고 나아가면 관료가 되었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교수의 전문 지식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있게 마련이고 정부라고 예외일 수 없다.

교수 입장에서도 자신의 지식을 현실에서 실천해 보자는 욕구가 없을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교수가 정부 요직을 맡는 경우가 물론 있다.

더욱이 아직 완전한 선진국이 아닌 한국에서 선진 문물 수입자로서의 교수 역할은 중요하다.

한국에서 교수의 역할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공무원의 문제점 때문이다.

한국의 고급공무원은 누구보다 우수한 집단이지만,수십년 간 권한 챙기기,좋은 자리 가기 위해 눈치 보기,부처 간 영역 다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덧 나라 전체의 관점에서 방향을 잡는 능력은 상실하고 만다.

과거 개발시대와 달리 모든 영역에서 관치(官治)가 청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세계화 시대에 이런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문제는 교수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대다수 교수는 정치과정을 통해 낙하산식으로 바로 고위직에 들어간다.

그런 사람들은 실무(實務)나 중간 직책에서의 경험이 없거나 있더라도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 산하 위원회 같은 곳에 참가한 경험이 있더라도 이름만 걸어놓고 구색을 맞추는 식이다.

그런 상태에서 고위직에 바로 투입되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

한국처럼 고위직 공무원의 회전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만 두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정권 초기에 교수들이 대거 참여하지만 곧 그 자리를 공무원 출신이 메우는 패턴이 지속된 것이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모습이다.

사정이 이러니 교수의 행태도 영향을 받게 된다.

전문 지식으로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정치 과정에 적당히 참여하여 고위 공직자가 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닌가.

'폴리페서'라는 이름도 바로 그런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무엇보다 교수들이 실무와 중간직책 단계부터 정책에 제대로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정부 산하 위원회에 참여할 때에는 전임(專任)으로서 실질적 역할을 하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공무원 사회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고시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한국에 고시제도를 전수(傳授)해준 일본도 폐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 출신에게 중간 단계에서 '정식' 교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퇴역 공무원들을 '객원교수'나 '초빙교수'로 데려와서 다음 자리로 가기 위한 정거장으로나 이용하게 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론과 정책에 모두 능한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해법이다.

정치교수(politics professor)가 아니라 정책교수(policy professor)로서의 '폴리페서'가 많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권 초기에 매번 당면하는 인재난을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