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슈나벨(57)의 직업은 많다.

화가 조각가 영화감독 인테리어디자이너 등.1980년대 미국 신표현주의의 기수이자 뉴 페인팅(New Painting)의 대표주자인데 영화 '잠수종과 나비'로 칸 국제영화제와 골든글로브상 감독상까지 거머쥔 걸 보면 영화감독으로도 프로 중의 프로인 셈이다.

'잠수종과 나비'는 마흔셋 인생의 절정에서 사고로 의식은 말짱한 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록트 인 신드롬(감금증후군)' 상태가 된 주인공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패션잡지 '엘'의 편집장이던 장 도미니크 보비의 실화다.

보비는 그 기막힌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한쪽 눈꺼풀을 움직여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을 써낸 다음 자신을 가둬두고 있던 잠수종(세상)을 떠나 나비처럼 날아간다.

상상력과 지나온 날들을 더듬어 책을 쓰는 보비와 그런 그를 곁에서 지키고 보살피는 이들의 모습은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을 자아낸다.

영화화하기엔 지나치게 무겁다 싶던 내용을 통해 슈나벨은 '인생이란,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야'라고 얘기한다.

이처럼 남들이 끝이라고 믿는 상태에서 새 길을 여는 것이야말로 슈나벨의 삶이고 예술이다.

70년대 중반 많은 이들이 회화는 끝났다고 여겼을 때 '무슨 소리' 하고 나섰던 게 그다.

추상표현주의에 이은 미니멀리즘의 지나친 생략에 물린 이들 앞에 깨진 접시조각을 이어붙이고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붓질로 죽음 광기 허무 공포 폭력 환희 등의 화두를 제기함으로써 표현으로서의 회화를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의 작업은 파격과 자유 및 삶에 대한 애정으로 요약된다.

그는 또 서핑을 통해 시시각각 다르게 달려오는 파도에 대응하고 보다 높은 파고에 도전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한다.

4월 말까지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슈나벨의 작품세계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기회다.

난해한 듯한 슈나벨의 그림이 이 봄 출구 없다 여기는 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가르쳐줄지 모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