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여느 해와 달리 최근 들어 현장을 찾는 총수들이 부쩍 늘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적)' 정부 출범 이후 기업하기 좋은 여건이 만들어지면서 총수들의 경영 행보에도 탄력이 붙는 모습이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과 유가가 치솟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총수들의 '현장 찾기'는 갈수록 잦아지는 추세다.
대내외 경영 여건 악화를 헤쳐나갈 해법을 현장에서 찾기 위해서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이 가장 활발한 현장 경영을 펼치고 있다.
정 회장은 연초부터 매주 한 차례 이상 계열사 지방 사업장을 찾고 있다.
'광폭(廣幅)'이란 표현이 자연스레 떠오를 법한 행보다.
정 회장이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곳은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 현장.정 회장은 지난 1월29일 이곳을 처음 찾은 데 이어 3월 초까지 네 차례나 방문해 제철소 건설 공정을 꼼꼼히 챙겼다.
"자동차와 더불어 제철을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충남 당진 현대제철 공장을 또다시 찾아 1박까지 하면서 현장 직원들을 격려했다.
현대제철에만 간 것은 아니다.
지난달 17일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18일에는 기아차 광주공장을 찾았다.
정 회장은 조만간 미국 현지의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둘러보는 등 글로벌 현장 경영에도 나설 계획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연초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올해 창립 61주년을 맞은 LG의 재도약을 이루기 위해 현장을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
구 회장의 현장 경영 키워드는 '실적 호조에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을 가지라는 것'이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이 급신장하고 있지만 위기는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그는 지난달 11일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임원 세미나에서 "최근 경영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실적이 부진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다음 날인 12일에는 대전에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찾아 기술 경쟁력을 높일 것을 당부했다.
또 3월5일부터 이틀간 중국 현지법인을 방문,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LG 계열사들의 사업 전략을 챙기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SK 세일즈'에 나섰다.
신사업 발굴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영업(?)까지 할 정도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SK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사업인 '하이브리드 배터리'.최 회장은 지난달 13일 전경련 회장단 만찬에서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그룹 회장에게 하이브리드카용 2차전지를 공동 개발하자고 제의했다.
같은 달 21일에는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관장하는 제프 빙거먼 미 상원 에너지ㆍ자원위원회 위원장을 대전 대덕에 있는 SK에너지기술원으로 초청했다.
최 회장은 빙거먼 위원장과 SK의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장착한 자동차를 함께 시승한 뒤 기술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4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 총수 중에서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이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그룹 외형이 커졌고 챙길 것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지난 2월 부산에 들렀다.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저가 항공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부산국제항공과 업무 제휴를 맺는 자리에 직접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3월 초에는 금호타이어 베트남 공장 준공식 참석을 계기로 베트남 사업 전반을 챙기고 돌아왔다.
대한통운 등 '새 식구' 챙기기에도 나섰다.
그는 지난달 초 서울 중구 서소문에 있는 대한통운 본사 13층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대한통운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다.
다음 날인 3월14일 화이트데이에는 대한통운 여직원 700명에게 초콜릿과 사탕 등이 담긴 깜짝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국내와 해외를 누비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조 회장은 지난 2월13일 대한항공이 후원하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한국어 안내서비스 행사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제주에서 조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미국 정계와 재계 인사를 만났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최근 경영 재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2월29일로 사회봉사명령을 모두 이행한 김 회장은 올해 글로벌 M&A(인수ㆍ합병) 등 해외 진출에 주력할 계획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지난해 말 태국 카타르 이란 등 해외 현장을 둘러보는 등 새해 시작 전부터 현장 경영에 나섰다.
허 회장은 올해도 GS건설이 대규모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 등 계열사들의 사업 현장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명/송형석/장창민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