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마케터 출신 요리사 필라 로드리게즈 "맛에 색을 입혀야 최고의 요리"
"패션업계에 있을 땐 '오늘 입은 의상은 누가 디자인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프라다와 구찌 중 어떤 디자이너 라인을 입었느냐고 묻는 것이죠.그러나 오늘 제가 입고 있는 옷은 조리사용 가운입니다."

칠레 요리사 필라 로드리게스가 흰색 주방장 유니폼을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그는 다채로운 이력의 주인공.칠레의 와인 농가 산페드로가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고 있는 프로모션 행사를 위해 방한 중인 그는 한때는 미국 고급 캐주얼 브랜드인 토미힐피거의 마케팅 이사로 10여년간 전 세계를 주름잡았다.

그는 "당시 1년에 200일을 호텔과 비행기,길 위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문득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휴직계를 던지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 파리로 갔다.

타고난 재능이자 취미였던 요리를 배우러.남들은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한다는 나이인 서른아홉 살 때다.

"처음엔 쉬고 싶은 생각이었고 MBA(경영대학원 석사)를 할 계획도 갖고 있었죠.하지만 MBA는 더 많은 연봉을 위한 투자일 뿐 나를 위한 투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나 자신과 용기 있게 정면으로 대면하는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며 "가슴 속 열정이 원하는 대로 인생이 흐르게 내버려 뒀을 뿐"이라고 말했다.

로드리게스는 파리 '르 코르동 블루'에서 2년간 요리를 배우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도 일했다.

고향에 돌아와선 칠레의 전문 잡지인 '플라체레스(Placeres)'가 선정한 '칠레 최고의 주방장'으로 뽑혔고 요리를 가르치는 쿠킹 스튜디오도 열었다.

지금은 칠레 음식과 와인을 홍보하는 전도사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과거 직장 경험도 살리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음식과 패션은 트렌드를 좇고 색과 멋을 감각적으로 매치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며 "패션 산업에 종사한 경험이 요리사로서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아르헨티나 출장 중 '당신이 음식에 영혼을 담아 나를 감동시켰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고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주위의 칭찬이 자신이 하는 일을 더 고무시킨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로드리게스는 칠레 요리를 알리는 일이 자신의 나라를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칠레 음식에는 토착과 유럽이 섞여 독특한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는 "와인은 궁합이 중요하다"며 "와인을 어울리지 않는 음식과 마시는 게 가장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화이트 와인인 쇼비뇽 블랑을 마실 때는 칠레의 전통 요리 '세비치'처럼 날음식을 먹는 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제안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