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완연하다.

걸어서 백마강에 나갔다.

강변에 봄빛이 내려 물오른 연두색 버드나무 가지가 강바람에 흔들린다.

낙화암 푸른 강물 위로 물새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이제 막 푸른 깃털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은 영원한 것! 언젠가 오늘 바라본 이 강물을 그리워하겠지.

봄이 찾아온 강마을 고샅에는 살구나무 가지 꽃들이 환하게 형광등을 켜고,매화 꽃송이마다 총기 있는 계집아이 속눈썹처럼 꽃술이 앙증맞게 붙어 있다.

늙은 기와집 뒤울안 장독대에 자목련이 벙끗 벌어지고,담장 밖 산수유가 겨울 두꺼운 추위를 벗어 던지며 활짝 웃고 있다.벚꽃의 화사함이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고,매화의 기상은 남정네의 붓끝에서 수묵으로 번진다.

봄꽃은 화사하다.꽃들은 왜 색색으로 예쁠까.진달래의 연분홍이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청초하게 피어나고,분홍빛 복숭아 과수원이 구릉 언덕에 구름처럼 피어나면 그야말로 세상은 꽃 천지다.

지난해 봄 딱 이맘 때,내가 가르치는 전통회화 전공 학생들과 공주시 계룡산 신원사로 봄소풍을 갔다.봄꽃이 눈부셨다.다음 날 아침 그 봄풍경에 반해 시 같은 일기 한 수를 썼다.제목은 '봄편지'.나에게 부친 편지다.

"…어제는 계룡산 신원사로 봄소풍을 갔다.절 초입부터 복숭아 진달래 산수유 벚꽃이 꽃 대궐을 이루었고,아이들과 함께 '고향의 봄'을 노래하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꽃잎 한 점이 바람에 날려 마치 선사들의 '한 소식'이 들리는 듯했고,소나무 숲에서 박새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계룡산 중악단 단군사당 안에는 오후의 늦은 봄 햇살이 정좌하신 단군 할아버지 앞으로 길게 비추이고,소나무 병풍을 둘러치고 폭포수 아래 범호랑이를 어루시는 할아버지 휘날리는 수염자락 사이로 봄새가 노래하고 있었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그림 밖을 나와 꽃잎이 더 흩날리는 산길을 걷다 보니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가 어우러져 봄 산의 오케스트라 화음에 마음이 환했다.

소풍에서 돌아와 밤 늦도록 연구실에서 책씨름을 하다가 문득 낮에 만난 스님의 뒷모습이 생각났는데,바람에 나풀대는 가사자락이 신선 같았다.봄산에서 봄밤까지 하루가 그림이었다."

1년이 훌쩍 지나 다시 봄이 돌아왔어도 마치 오늘 사진을 찍은 듯 생생하다.봄이 좋기는 좋다.생기가 난다.봄은 연두색 깻잎처럼 상큼하다.무채색의 겨울에서 다채색의 봄으로의 변화는 꽃의 화려함보다 풀과 나무의 연둣빛 초록이 서서히,눈에 띄지 않게 변하다가 결정적으로 확 바꾸는 데 있다.그때가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