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있었던 국토해양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주택은 필요한 곳에 많이 짓고 필요하지 않은 곳에 적게 지어야 한다.
그런데 필요한 곳에 규제를 하니까 사업하는 사람들이 규제 없는 곳에 가서 해보려다 보니 미분양이 생겼다"고 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지방 시장은 2004년에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정부는 오로지 서울 강남권 주택에만 관심을 두고 각종 규제와 중과세 조치들을 연이어 도입 또는 강화했다.
이런 조치들은 결국 강남권 주택공급을 막는 한편 지방시장에서는 미분양 사태를 불러왔다.
1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12만3371가구로 집계되는데,이는 국제통화기금(IMF)경제위기 기간 중의 최대 미분양 물량에 근접하는 수치다.
미분양 외에도 분양은 됐지만 계약 체결이 되지 않은 미계약,잔금납부가 이뤄지지 않은 미입주 아파트들이 주택사업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들을 다 합치면 15만가구 이상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대량 미분양 사태는 주택사업자와 시공사들뿐 아니라 전후방 연관산업의 생산과 고용에 타격을 준다.
주택산업연구원의 2004년 분석에 따르면 주택건설업에 1조원을 투자하면,추가적인 생산유발 효과가 1조848억원에 달한다.
이 효과를 주요 제조업종과 비교할 때 조선업과 유사하고 반도체보다 높은 정도이지만,취업유발 효과는 2만7400명으로 조선(1만4300명),반도체(5300명),자동차(1만4500명)에 비해 월등히 크다.
미분양에 따른 주택건설 위축이 생산과 고용에 약영향을 미치는 데 덧붙여 일부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경제위기 이후 주택개발에는 금융회사의 PF(프로젝트파이낸스) 대출이 필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데,미분양 등으로 인해 사업성과가 나쁠 경우 일차적으로는 시공사가 책임을 지고,시공사마저 버틸 수 없으면 금융회사가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다.
다행히도 작년 이후 감독기관의 지도 아래 금융회사들이 PF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고자 노력해 왔지만,일부 저축은행들은 직간접으로 과도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미분양 주택의 부정적 영향이 크지만,단순히 어려움에 빠진 건설업체나 저축은행을 구제하는 목적이라면 특별한 대책 마련을 주장하기 힘들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달려드는 기업들이 때로는 성공해 큰 보상을 받고 때로는 실패해 도태(淘汰)되는 것이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규율이 아니라,불필요하고 과도한 정부 규제나 국책사업들 때문에 문제가 악화되었다면 차제에 제도를 합리화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는 부동산 투기의 대표적 형태를 1가구 다주택 보유로 상정하고 각종 세금을 중과세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 주택시장에서 다주택 보유를 권장한다면,당장 미분양을 줄여서 건설업체와 금융회사의 어려움을 덜 수 있고,정부 예산에 기대지 않고 무주택자에게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게 되며,나중에 집값이 오를 때 풀릴 수 있는 공급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1가구 다주택 보유가 투기이고,투기는 나쁘다'는 고정관념을 깬다면 당장 유효한 정책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대규모 펀드나 기금을 활용한 미분양 주택 투자가 어떤 애로점을 갖는지를 살펴서 정책적으로 해결해 주는 '찾아가는 행정'을 펴는 것도 바람직하다.
새정부는 주택시장에 대한 여러 미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법을 구사해야 할 것이며,미분양 주택 문제가 그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