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경색으로 월가의 신음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남몰래 웃는 이들이 있다.

바로 죽은 짐승을 먹고 사는 독수리(vulture)처럼 부실 기업이나 채권을 싼 값에 사들여 비싸게 파는 '벌처 투자자'가 그들이다.

신용경색으로 위기에 처한 기업들과 주택 소유주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고 마켓워치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등이 5일 보도했다.

최근 사모펀드인 매틀린패터슨은 파산 위기에 처한 모기지 회사 손버그로부터 4억5000만달러어치의 채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매틀린패터슨은 이번 투자로 18%의 이자와 함께 손버그 주식을 주당 1센트에 사들일 권리를 얻었다.

또 손버그를 구원한 매틀린패터슨과 다른 투자자들은 최고 90%의 회사 지분을 취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 이사 선임 권리까지 지니게 됐다.

매틀린패터슨은 2005년 위기에 몰린 화학 업체 헌츠맨과 월드컴 등의 지분을 염가에 사들인 후 되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린 바 있다.

모기지 업체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의 스탠퍼드 컬랜드 전 최고경영자(CEO)는 값이 추락한 모기지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펀드 조성에 나섰다.

헤지펀드 블랙스톤은 주택들이 헐값에 나오자 100억달러 규모의 부동산 펀드를 설립했다.

헤지펀드 팔콘하빙거가 운영하는 벌처 투자 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월가를 휩쓸기 시작한 지난해 운용자산이 170% 증가했다.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인 앤디 케슬러는 "널린 시체들 사이로 독수리들(벌처 투자자)이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있다"며 "거품이 터지면서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살 수 있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월가에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워런 버핏과 윌버 로스 등 현금이 풍부한 투자자들은 이미 선수를 쳤다.

부실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윌버 로스는 지난해 9월 주택대출 업체인 아메리칸홈모기지를 인수한 데 이어 금융 서비스 회사인 H&R블록의 모기지 계열사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도 지난해 부도 위험에 내몰린 주택담보대출과 채권보증 업체 투자를 선언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