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생 < 서강대 국제문화 교육원장 >


우리나라 남자들이 가장 꾸기 싫어하는 꿈이 군대에 다시 가는 것이라고 한다.

군 복무를 이미 마쳤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사무소나 병무청에 가서 확인을 해봐도 아무런 근거서류가 남아 있지 않아 낭패에 빠지는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다.

그나마 꿈이니 망정이지 그런 일이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겠는가.

내게는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 벌어진 적이 있다.

1981년 2월 제12대 대통령 선거인단을 뽑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전두환씨가 새로 개정된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형식적으로 실시하는 간접선거의 일환이었다.

하루종일 투표참여를 고민하다가 마감 20분 전에야 투표장에 도착해 투표를 하려 했는데 문제가 일어났다.

내가 이미 투표를 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내 이름 옆에 서명해놓은 선거인 명부까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직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그 서명이 내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낯선 사내들의 험악한 눈초리에 기가 질린 나는 투표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투표를 할라치면 혹시라도 나 아닌 어떤 사람이 내 이름으로 이미 투표를 마쳤는지를 먼저 걱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은 앞으로 4년 동안 우리를 대신해서 법을 만들고 정책을 심의하며 행정부의 권력집행을 감시하게 될 대표를 뽑는 날이다.

그런데 중앙선관위는 이번 선거 투표율이 역대 가장 최저인 50% 초반에 머무를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투표 참여자에게 국립박물관,미술관 등의 이용권을 부여하는 인센티브 제도는 조금이나마 투표율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당국의 안간힘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는 성별,인종,종교,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실상 이러한 제도가 인류사에 뿌리를 내린 지는 얼마 안 된다.

기록에 따르면 짧은 생명을 가졌던 코르시카공화국(1755~1769)이 보통선거를 실시한 첫 번째 국가다.

이를 제외하면 1893년의 뉴질랜드가 가장 먼저다.

근대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간주되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보편적인 투표권의 획득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19세기 영국사를 살펴보면 당시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그랬듯이 여성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으며 일정규모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었다.

모든 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1918년이었으며 모든 여성에게까지 투표권을 허용한 것은 1928년이었다.

미국은 1870년 모든 인종에게 투표권을 허용했으며 1920년에야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연방선거에서 각종 세금 납부를 선거권의 요건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투표에서 경제적 평등권을 보장한 것은 1964년에 이르러서였다.

이같이 우리의 암울했던 독재시대를 회상하거나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갈구해온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투표를 '민주시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하는 까닭을 보다 실감할 수 있다.

그럴진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에 대한 우리 국민의 무관심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정치를 신명나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지 못한 정치인들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공천작업의 혼란으로 정당간 이슈대결이나 정책선거가 실종된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투표권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투표장으로 갈 이유가 그래도 하나는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