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철 SK엔카 사장(46)은 중고차 예찬론자다.

국내 최대의 중고차 전문기업 대표여서만이 아니다.

중고차에는 전 주인들의 정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줄곧 중고차를 몰아왔다.

1985년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결혼 전 중고 '뉴프린스'를 샀다.

이후 차체 뒷부분을 용접으로 붙인 흔적이 있던 '매그너스',대형 사고 기록이 있던 '아카디아',주행거리가 10만㎞인 '그랜저XG',고객에게 팔기 힘들 정도였던 구형 '체어맨' 등으로 차를 바꿔왔다.

최근에 사들인 차는 '뉴오피러스'.역시 전면부에 접촉사고 기록이 있는 중고차다.

박 사장은 "중고차를 몰다보면 이전 주인들의 소중한 꿈과 추억,사연을 느낄 수 있어 좋다"며 "싼 값에 사들여 약간만 손보면 훌륭한 '애마'로 탈바꿈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2000년 말 SK엔카를 설립했다.

SK㈜에서 신규 사업을 찾던 그는 사내벤처 형태로 중고차 온라인 거래소인 '엔카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중고차를 몰고 다녔으면서도 중고차 시장의 생리는 전혀 모르던 때"였다는 게 그의 회고.박 사장은 "당시 과장 신분으로 한 회사의 인사·운영·예산권을 모두 갖게 된 것은 파격에 가까웠다"며 "벤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변화,속도,자유가 바로 SK엔카가 추구하는 경영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SK엔카 출범 때 난관도 적지 않았다.

기존 중고차 딜러들은 "대기업이 왜 중고차 사업에 진출하느냐"며 반발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등으로 몰려와 대규모 '궐기대회'도 가졌다.

박 사장은 즉각 딜러들을 만났다.

SK엔카는 중고차 딜러와 소비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사업모델이란 점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당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인터넷에 이런 논리의 댓글을 달았던 것도 바로 박 사장이었다.

그는 "위기가 또 다른 기회를 낳는다는 신념 하나로 버텼다"며 "연 1600억원 매출에 125만명의 회원 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SK엔카가 당시 화제를 뿌리며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라고 뿌듯해했다.

박 사장은 올해 본격적으로 중고 수입차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다만 SK그룹 내 자동차 부문 쌍두마차인 SK네트웍스와 달리 가격 경쟁은 벌이지 않을 방침이다.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독특한 모델을 많이 수입키로 했다.

중고 수입차를 직수입하기 위해 10여곳의 미국 경매장과 제휴도 맺었다.

올해 중고 수입차 판매목표를 200여대로 잡았다.

박 사장은 "1차로 기업을 공개해 자본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출 계획"이라며 "장기 목표는 회사를 매출 1조원 규모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