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석에서 제작자,투자자들과 한국영화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감독 중에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봉준호와 최동훈 감독의 이름이 나왔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해 '타짜'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해 흥행에 실패했지만 두 번째 영화인 '살인의 추억'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후 '괴물'로 1000만 관객 고지에 올랐다.

이 두 감독의 영화는 단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는 것,흥행에 성공해 제작자와 투자자,극장주를 모두 만족시켰다는 것,잘 짜인 이야기와 높은 완성도로 평단에서도 박수를 받았다는 것 등이다.

관객·제작자·평론가 등 영화의 삼위일체를 모두 만족시키는 영화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모든 영화인들이 이 두 감독과 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싶다.

두 감독 중 봉준호 감독과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1999년 문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플란다스의 개'를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지리멸렬'이라는 단편영화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감독의 데뷔작이고,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이성재가 주연을 맡고 있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신인답지 않은 장악력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봉 감독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개인적으로는 '플란다스의 개'를 무척 좋아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괴물'을 제작한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이후 봉 감독을 몇 차례 만나면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플란다스의 개'가 그렇게 안 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추측이지만 당시 봉 감독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일까' '왜 관객이 많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등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봉 감독을 보며 '절대 흥행을 무시하고 영화를 만들지 않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후 심기일전해서 나온 영화가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다.

그래서 '괴물' 이후 봉 감독의 차기작은 충무로의 핫이슈였다.

프랑스 일본 한국이 공동 제작하는 옴니버스 프로젝트 '도쿄'가 가장 먼저였고,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 혹은 자신이 쓴 '마더' 중 하나가 다음 영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먼저 '마더'가 낙점받았다.

'마더'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위해 홀로 세상에 맞서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의 어머니 김혜자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스타 원빈이 함께 한다.

'마더'에서 모정이라는 무기로 아들을 구하고자 하는 김혜자의 캐스팅은 2004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봉 감독이 김혜자를 찾아가 언젠가 함께 영화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그녀를 염두에 두고 '마더'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가을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 '마더'의 경우 캐스팅만 봤을 때 어머니 연기에서 항상 울림을 주는 김혜자와 스타 배우 원빈이 있어 흥행성은 일단 인정해야겠다.

거기에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니 당연히 기대를 갖게 된다.

/이원 영화칼럼니스트 lateho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