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훈동 소재 대성그룹 사옥 12층의 회장실.김영훈 회장(56)은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일하다 짬을 내 국궁(國弓)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집무실 한 쪽에는 과녁까지 갖춰 놨다.

기자와 인사를 마친 김 회장은 다시 무릎을 곧게 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5초가량 숨을 고르더니,온 몸의 신경과 힘을 활에 집중시켰다.

이 순간 김 회장은 온갖 잡념을 털어버린 듯 보였다.

김 회장은 활쏘기 자세만 가다듬는 게 아니다.


김 회장이 국궁의 매력에 빠져든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입문 동기는 어깨 통증 치료였다고 한다.

"오십견 때문에 활을 당기게 됐어요.

병원에 다니고 약도 먹었는데 소용이 없더군요.

지인의 권유로 국궁을 시작했는데,처음엔 시위를 당길 때마다 엄청 고통스럽더군요.

신기하게도 서너 달 지나니까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어요.

그 이후 손에서 활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김 회장은 국궁을 혼자만 즐기지 않는다.

전파하는 데도 무척 애를 쓴다.

주변 사람들에게 활을 선물하고,직접 '한 수' 지도하기도 한다.

"국궁을 하면 마음도 다스릴 수 있고,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는다.

김 회장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활을 쥐고 화살을 허리춤에서 빼 시위의 절피(화살 꽂는 곳)에 끼웠다.

천천히 활을 들어올리고는 활을 최대한 팽팽하게 만들었다.

다시 활을 내려놓은 김 회장은 국궁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국궁과 인생'을 설파했다.

"국궁은 활대가 많이 뒤집어져야 복원력이 커지고 힘이 나옵니다.

사람도 큰 일을 겪어봐야 센 힘을 낼 수 있지요.

국궁은 '인생의 역경을 즐기라'는 교훈을 줍니다.

국궁의 매력은 과녁을 앞에 두고 서면 정신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그리고 과녁이 하나가 될 때는 모든 걸 잊습니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그림을 그릴 때 정치와 전쟁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제게는 국궁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사업도 국궁에 빗대 설명했다.

활시위를 당기는 과정이 기업 경영과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절정에 이를 때까지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만작(滿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발디딤,몸가짐,살먹이기,들어올리기,밀며당기기,만작,발시(發矢),잔신(殘身) 등 활쏘기의 8단계 가운데 만작이 제대로 이뤄져야 과녁까지 화살이 제대로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만작을 사업을 시작할 때 투자를 미리 준비하는 과정에 빗댔다.

만작이 잘못된 화살이 과녁에 닿을 수 없듯이,투자를 잘못하면 원하는 경영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이치다.

이른바 '국궁 경영론'이다.

"사업도 국궁과 마찬가지입니다.

국궁과 경영은 투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국궁은 양궁과 달리 물소뿔을 깎아 만든 활이어서 추진력에다 복원력까지 있어야 멀리 나갑니다.

추진력과 복원력이 합쳐진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최상의 만작을 이뤄내야 합니다.

기업 경영도 적절한 투자와 준비가 있어야 큰 성과를 낼 수 있죠."

김 회장은 내친 김에 에너지 사업 얘기도 꺼냈다.

그는 "2003년부터 몽골에 태양광·풍력 복합발전 시스템을 공급해온 대성그룹이 미래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선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성그룹은 울란바토르시 일대 300만㎡ 규모의 불모지를 녹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도 벌이고 있다.

"몽골 프로젝트의 골자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황무지 지역에 태양광과 풍력을 활용한 복합발전 시스템으로 전기를 만들고,이 전기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녹지화를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전 세계 사막화 방지 사업의 표준 모델이 될 만한 사업이죠.몽골 프로젝트를 위해 만작을 끝냈으니,이젠 활시위를 당기는 일만 남았네요."

김 회장은 인터뷰가 끝나자 아끼던 활과 화살을 하나씩 꺼내 기자에게 건네며 "국궁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보라"고 권했다.

"부지런히 연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