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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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화가 www.choisunho.com>
목련꽃 피는 언덕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으며 흥얼거리는 사월. 햇살 눈부신 교정을 뒤로하고 나는 여수 흥국사에 갔다. 거기에는 조선 후기에 건축된 기품 있는 대웅전과 아름다운 조선 목동자상이 있다. 흥국사 목동자상은 조각의 솜씨도 우수하거니와 그 위에 칠해진 색깔이 세월에 바래고 때 묻어 깊이 있는 조선색감을 보여준다. 조각상을 언뜻 보면 붉고 푸른 무당집 색깔이지만,자세히 보면 그냥 붉은색이 아니라 채도가 선명한 다홍으로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여기에 진한 초록과 비단바탕 같은 차분한 흰색,푸른빛이 상큼하고 짙은 쪽색이 어우러진 조선색의 향연이다. 여수에서,순천에서,광양에서 온 보살들과 할머니들이 떨어지는 벚꽃 그늘 아래서 봄날을 즐기고 있다.
누운 김에 발 뻗는다고 여수까지 와서 싱싱한 봄 도다리 맛을 보지 않으면 내려온 보람이 없겠지. 항구의 횟집에 갔다. 봄 생선들이 수조 가득 넘치고,커다란 플라스틱 그릇에 개불이며 소라 문어가 가득이다. 시키기도 전에 먹음직스러워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적당히 흥정을 하고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아따 참말로 잘해부렀어잉'부터 '거시기 뭐드냐,고것이 긍께 그랬지라…'까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독한 소주와 섞여 마구 날라다닌다. "봄에는 향긋한 개불의 달작지근한 이 맛이 일품이지라…"라며 인심 좋게 생긴 주인 아주머니가 모듬안주를 내민다. 개불은 보기에 꼭 커다란 지렁이처럼 징그럽지만 한입 초장을 찍어 씹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혀 끝에 묘하다.
어느덧 한 잔 두 잔 잔 수가 늘자 우럭탕이 나온다. 우리집 아저씨가 잡은거라고 단단히 생색을 내며 끓인 비릿한 우럭탕에 향긋한 쑥갓 향이 막 번진다. 이것 저것 젓가락이 옮겨지다가 우럭대가리에 붙은 볼때기 살에 눈이 갔다. 볼살이라고 해봤자 일회용 콘텍트렌즈만큼 밖에 안되는 작은 살점이 씹히는 맛은 황홀했다. 헐! 이렇게 맛있는 살코기가 여기 있다니…. 다시 반대편 볼때기를 살폈다. 난 기름진 뱃살보다 쫄깃한 볼살이 좋다. 아니 게으른 뱃살보다 부지런한 볼살이 더 좋다.
하하거리며 맛있는 저녁을 하고 나오니 항구의 불빛이 바닷물에 아른거린다. 횟집 밖 수족관에 한눈팔고 빈둥대다 그물에 걸려 항구까지 올라온 도다리가 두 눈을 한쪽으로 몰아붙인 채 물 속에서 삐뚫어진 입만 뻥긋댄다. 내가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그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 한번 꿈쩍 않는다. 햐! 요놈 쑥국 끓이면 맛있겠는데….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왔다.
목련꽃 피는 언덕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으며 흥얼거리는 사월. 햇살 눈부신 교정을 뒤로하고 나는 여수 흥국사에 갔다. 거기에는 조선 후기에 건축된 기품 있는 대웅전과 아름다운 조선 목동자상이 있다. 흥국사 목동자상은 조각의 솜씨도 우수하거니와 그 위에 칠해진 색깔이 세월에 바래고 때 묻어 깊이 있는 조선색감을 보여준다. 조각상을 언뜻 보면 붉고 푸른 무당집 색깔이지만,자세히 보면 그냥 붉은색이 아니라 채도가 선명한 다홍으로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여기에 진한 초록과 비단바탕 같은 차분한 흰색,푸른빛이 상큼하고 짙은 쪽색이 어우러진 조선색의 향연이다. 여수에서,순천에서,광양에서 온 보살들과 할머니들이 떨어지는 벚꽃 그늘 아래서 봄날을 즐기고 있다.
누운 김에 발 뻗는다고 여수까지 와서 싱싱한 봄 도다리 맛을 보지 않으면 내려온 보람이 없겠지. 항구의 횟집에 갔다. 봄 생선들이 수조 가득 넘치고,커다란 플라스틱 그릇에 개불이며 소라 문어가 가득이다. 시키기도 전에 먹음직스러워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적당히 흥정을 하고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아따 참말로 잘해부렀어잉'부터 '거시기 뭐드냐,고것이 긍께 그랬지라…'까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독한 소주와 섞여 마구 날라다닌다. "봄에는 향긋한 개불의 달작지근한 이 맛이 일품이지라…"라며 인심 좋게 생긴 주인 아주머니가 모듬안주를 내민다. 개불은 보기에 꼭 커다란 지렁이처럼 징그럽지만 한입 초장을 찍어 씹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혀 끝에 묘하다.
어느덧 한 잔 두 잔 잔 수가 늘자 우럭탕이 나온다. 우리집 아저씨가 잡은거라고 단단히 생색을 내며 끓인 비릿한 우럭탕에 향긋한 쑥갓 향이 막 번진다. 이것 저것 젓가락이 옮겨지다가 우럭대가리에 붙은 볼때기 살에 눈이 갔다. 볼살이라고 해봤자 일회용 콘텍트렌즈만큼 밖에 안되는 작은 살점이 씹히는 맛은 황홀했다. 헐! 이렇게 맛있는 살코기가 여기 있다니…. 다시 반대편 볼때기를 살폈다. 난 기름진 뱃살보다 쫄깃한 볼살이 좋다. 아니 게으른 뱃살보다 부지런한 볼살이 더 좋다.
하하거리며 맛있는 저녁을 하고 나오니 항구의 불빛이 바닷물에 아른거린다. 횟집 밖 수족관에 한눈팔고 빈둥대다 그물에 걸려 항구까지 올라온 도다리가 두 눈을 한쪽으로 몰아붙인 채 물 속에서 삐뚫어진 입만 뻥긋댄다. 내가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그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 한번 꿈쩍 않는다. 햐! 요놈 쑥국 끓이면 맛있겠는데….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