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4·9총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386'좌파 정치인들의 퇴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의회 권력의 교체를 넘어 새로운 시대정신의 도래를 상징한다.

386의 몰락이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4년 전의 화려했던 국회 입성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당시 열린우리당 386초선 의원은 33명이었다.

전대협 출신만 12명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차지한 것처럼 기고만장했고 특유의 세련되지 못한 감성적 언어로 포효했으며,기회있을 때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름으로써 비운동권 사람들을 주눅들게 했다.

2008년 세상은 바뀌었다.

유권자들은 80년대 운동권을 이끈 전대협의 1,2,3기 의장들을 비롯한 전대협 세대를 불신임했고 또 운동권의 대부였던 김근태,유인태 의원 등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레드카드를 내민 것이다.

퇴장명령을 받은 그들은 갑자기 초라해졌다.

왜 이렇게 '권불오년(權不五年)'이 된 것일까.

한마디로 이들의 가치관과 비전,아젠다와 담론이 새로운 시대와 부조화한,낡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386처럼 대한민국 과거에 대해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세대도 없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건국·산업화 세대는 오직 친일·친미를 방패 삼아 기득권을 누린 세대였을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줄곧 불의와 기회주의의 역사로만 조망하던 그 외곬의 편벽됨은 시대적 총아로 부상하고 있는 신(新)산업화 세력은 물론,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정보화세대에게 편안함보다 불편함으로,시대를 앞서나가는 '선각자적 비전'보다는 시대착오적인 '퇴영적 비전'으로 다가왔다.

또 반미·반일·친북으로 요약되는 저항적 민족주의는 역동성보다 폐쇄성을 띤 것으로,실사구시보다 이념과잉의 아젠다로 읽혀졌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평화를 이룬 게 자신들의 포용정책의 결과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면서도 사람들이 기가 막혀 한다는 것을 몰랐다.

이쯤 되면 세상을 못 보는 것인지,아니면 세상을 보는 눈을 아예 상실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결국 그들의 눈이 낡은 좌파이념과 아마추어리즘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또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이 '빨갱이'로 불린 과거에 대해 한을 잊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해서는 조그만 흠결만 있으면 '친일파'로 낙인찍음으로써 주홍글씨를 새기려 하였다.

한때 공론의 장에서 파격으로 느껴졌던 그들의 언어는 언제부터인가 문(文)·사(史)·철(哲)의 교양이 부족한,천박한 언어로 지탄받기에 이르렀다.

386은 '민족끼리'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들은 한때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무기삼아 하늘을 날았으나,한국의 번영을 이끈 원동력이 무엇이며,세계적인 도도한 흐름이 손짓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성찰할 시간과 지적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추락한 것이다.

이제 386식의 아젠다 설정과 담론(談論)에 넌더리를 낸 국민들은 그 아마추어적 좌파 정치행태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정했다.

시대적 가치의 전환,아젠다의 교체를 위해선 그들의 퇴장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한 것일까.

'열린 민족주의'와 문명사적 가치를 흡입하기를 주저하며 '평화애호세력'이나 '민주개혁세력'으로 자처하는 것만으로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 것이다.

이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던 386좌파의 기개는 한국 정치사에서 한갓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죽은 것은 아니다.

다만 사라져갔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언젠가 '제3의 길'이나 '뉴레프트' 등 새롭게 변신함으로써 정치무대에 다시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