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질서가 국가경쟁력이다] (2) 폴리스라인은 선진국 출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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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난 8일 오후 3시 뉴욕 맨해튼의 유엔본부 길 건너편.재미 티베트인들로 이뤄진 100여명의 시위대들이 "노 피스 노 게임(No Peace No Gamesㆍ평화 없는 베이징올림픽 반대)""웰컴 웰컴 반기문(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나서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대 티베트 정책과 관련,유엔의 개입을 요구하는 시위다.
이들 주변에는 일종의 바리케이드인 철제 구분막이 둘러쳐져 있다.
이른바 '폴리스 라인'이다.
"보통은 '폴리스 라인'이라고 쓴 노란색 줄을 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최 측과 합의해 철제 구분막을 쳤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시위대 중 누구도 정해진 지역을 일탈하지 않았다.헬멧도 갖추지 않은 경찰의 모습도 한가롭기만 하다.
#2.지난 4일 오후 도쿄 시내 테이코쿠호텔 앞.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독도는 일본 땅이니 한국정부는 즉각 반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일 중인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곳에 머문다는 걸 알아채고 기습시위를 벌인 것.그러나 주변의 경찰들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시위대들이 폴리스 라인을 넘어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시위대도 유 장관이 호텔을 떠나자 잠시 후 조용히 사라졌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전형적인 시위모습이다.
미국 경찰은 집회신고를 대부분 허가해주고 시위대도 최대한 보호한다.
그러나 사전 신고범위를 벗어나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폴리스라인을 이탈할 경우 불법시위로 간주해 물리력이 동원된다.
경찰의 지시에 불응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체포한다.
체포가 어려우면 비디오 등으로 찍어 증거를 확보한 후 검거한다.
이들은 가담정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다.
만일 각목 등이 동원되는 시위로 발전하면 물대포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의 강력한 진압이 뒤따른다.
이런 시위문화가 정착돼 있다보니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인들이 보면 싱겁기 짝이 없는 시위다.
이런 시위가 가능한 것은 철저한 상호존중 및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지는 관행 덕분이다.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불이익을 받을 경우 시위대는 소송을 통해 배상받을 수 있다.
반면 경찰을 공격하는 시위대에 대해선 철저한 법적 책임을 묻는다.
불법시위에 따른 손해는 끝까지 배상받는다.
"불법시위대를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걸 시민들이 당연히 여기고 집회 및 시위의 자유 못지않게 공권력의 권위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시민의식도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정착시킨 주된 요인(바비성 뉴욕경찰)"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폴리스 라인을 지키는 건 기본이다.
대부분은 좌우정렬해 질서있게 행진한다.
시위현장의 경찰은 교통정리를 하는 게 고작이다.
물론 일본에서 불법ㆍ과격 시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969년 1월 좌익 활동가와 학생 등 1만여명이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가 강제 해산된 사건은 대다수 일본인들이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일본 경찰은 헬리콥터와 방수차를 동원하는 등 전투를 방불케 하는 진압작전을 펴 과격 농성자 768명을 전원 체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과격ㆍ폭력 시위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배경은 두 가지다.
우선 불법시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다.
일본 경찰청 기동대 오타 노리히코 경시(총경급)는 "1970년대부터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률이 제정돼 예외없이 적용됐다"며 "강한 처벌이 불법시위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에선 폴리스라인 침범 등 경찰과 사전 합의된 사항을 어기면 가담자 전원이 연행된다.
주동자는 1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시민들이 불법ㆍ과격 시위에 등을 돌린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과격파들이 불법시위로 도로 교통을 막아 도심을 마비시키는 데 대해 일본 국민들은 분노했고,경찰의 강력한 대응에 박수를 쳤다.
일부 시민들은 시위대를 상대로 민사상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뉴욕=하영춘/도쿄=차병석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