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부실에 따른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제약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최근 약가 인하의 '시범케이스'로 270개 고지혈증 치료제에 대한 약효 및 경제성을 평가한 결과 일부 업체의 경우 보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약값을 최대 40%가량 낮춰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중외제약 등은 지난 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발표한 고지혈증 치료제 평가 결과에 반발,이의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평원이 "고지혈증 치료 물질인 심바스타틴 아토르바스타틴 등 약물 7종 간에 효능 차이가 별로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심바스타틴 제제를 이용한 약품의 평균 가격이 가장 낮은 만큼 이보다 비싼 고지혈증 치료제에 대해선 보험급여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심바스타틴 제제는 오리지널 제품인 한국MSD의 '조코'에 대한 특허가 만료된 뒤 다양한 복제약이 나오면서 평균 가격이 정당 838원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아토르바스타틴을 이용한 신약인 화이자의 '리피토'(정당 1239원)가 보험 혜택을 계속 받으려면 정당 401원씩 인하해야만 한다.

정부 방침대로 약가가 떨어지면 건강보험은 물론 환자들의 부담도 줄어들지만,만약 업체들이 인하를 거부하면 해당 제품이 보험 비급여 대상 품목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은 지금보다 3~4배 비싼 값에 구입해야 한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의 무리한 약가 인하 정책은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의지를 꺾을 뿐 아니라 환자들의 치료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평원은 또 중외제약과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해선 사망률 데이터 등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험급여 지급을 제한하겠다고 통보했다.

중외제약이 판매 중인 일본 고하제약의 '리바로'는 조코에 비해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저밀도 지단백) 수치를 더 떨어뜨리고,좋은 콜레스테롤인 HDL(고밀도 지단백) 수치를 끌어올리는 데다 가격도 조코(1219원)보다 정당 151원 싼 제품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사망률 등 장기 임상 데이터가 나오려면 발매 후 10년가량 걸리지만 이들 제품은 출시된 지 2년밖에 안 됐다"며 "'있을 수 없는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다고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 관계자는 "장기 안전성을 입증한 약품과 그렇지 못한 약품에 차등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뚜렷한 효능 개선 효과가 없는데도 신약이란 이유만으로 높은 보험약가를 주던 관행을 바꾸려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원칙에 따라 고혈압 치료제 등의 가격도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