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공법학 >

총선이 끝났다.

향후 4년의 정치지형의 기본틀이 결정된 셈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약간 넘는 의석을 얻은 총선결과에 대한 해석은 대동소이하다.

힘은 주지만 오만은 안 된다는 민의를 구현한 절묘한 구도라고도 하고 200석이 넘는 개헌의석을 얻은 범보수권의 완승이라고도 한다.

대통령은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타협과 통합의 정치를 펴면서 경제살리기,민생챙기기에 매진하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민의를 받든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과연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틈만 나면 역설해 마지않던 경제 살리기부터가 문제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고하고 내수진작이 급선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지만,좀처럼 호전될 조짐이 없이 악화된 대내외 경제여건에서 실제로 정부가 구사할 정책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방경제는 최악의 침체에 빠져 신음하고 있다.

돈을 풀려니 물가가 걱정이고 건설경기를 진작시키려니 부동산 투기와 집값 상승이 걱정이다.

규제를 뜯어고치고 지난해 걷힌 추가 세수(稅收)를 내수촉진에 투입하겠다고 했지만,그런 식으로 내수가 다시 살아날까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두 번째 의문은 최근 급랭해 위험 수준으로 악화된 남북관계에 관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뤼디거 프랑크 교수는 햇볕정책이야말로 고도로 실용적인 접근법이었고 또 실제로 성과도 있었지만,서울은 어느날 일어나 한때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지렛대를 모두 잃어버렸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남북관계의 기존 틀을 새로 정립하는 조정기간을 거친다는 관점에서 원칙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하겠다고 천명했지만,어딘가 석연치 않다.

이명박정부가 견지해온 실용주의에 비춰볼 때,얻은 게 무엇인지 분명치 않은 반면,섣불리 대북관계 언동들로 그동안 천신만고 끝에 확보한 실리와 기반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셋째,한반도대운하 건설도 이명박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문의 하나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중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고 했지만,한반도대운하는 여전히 대통령 공약사항이다.

관련부처와 업계에선 기정사실처럼 돼 버린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려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넷째,대통령이 틈만 나면 강조했던 공공부문 개혁 문제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정부산하기관이나 공기업,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서는 이미 폭풍전야의 불안이 완연하다.

한국 최초 우주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이제 21세기는 우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조직 개편의 결과 과학기술연구가 위축되고 IT정책이 실종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만든 과학기술혁신체제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정책의 비전과 틀이 아직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이명박정부가 참여정부 막바지에 이뤄졌던 대통령임기 및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행할 건지,언제 어떻게 이행할 건지도 의문이다.

이명박정부에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함께 가야 한다.

절묘한 과반수에서 대통령이 읽어 내야 할 또 다른 민의는 정부가 좀 더 명확한 정책목표를 제시하고 어떻게 실천할 건지 밝혀 의구심을 풀면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