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질서가 국가경쟁력이다] (3) 신호등만 지켜도 경제 파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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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비싸요. 싼 걸로 해줘요."
"안됩니다. 원칙대로 범칙금을 내셔야 합니다."
"사고도 안 났는데 규정 좀 어기면 어때요."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시면 사고날 우려가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15일 오후 1시께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로터리.
서대문 경찰서 소속 황현일 경장이 갓길에서 운전자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6만원짜리 범칙금 대신 '약한 걸'로 끊어달라는 게 운전자의 요구.
입씨름은 끝간데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동료들 사이에 '독종'으로 통하는 황 경장의 판정승.
운전자가 떠나면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에이,재수 없어."
황 경장의 출근 시간은 아침 8시.장비를 챙기고 전달사항을 듣고 현장에 도착하면 고단한 하루가 시작된다.
황 경장이 소속된 교통과 안전계는 경찰 내에서도 3D업종으로 불릴 정도로 경찰관이 기피하는 부서다.
낮 시간 동안 자동차 매연 속에서 난폭 운전자와 실랑이를 벌인 후 피곤한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밤에는 또 음주 운전자와 신경전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관할지역인 독립문 로터리 부근은 출.퇴근 시간대가 되면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교통이 마비돼버린다.
차량 5대가 지날 구간에 한꺼번에 20대가 몰리는 경우도 있다.
"나만 먼저 가면 된다는 식으로 신호가 바뀌어도 차머리를 밀고 들어오니까 통제가 안돼요."
끼어들기 하는 얌체 운전자 외 별별 유형의 운전자들을 다 겪는다.
법규 자체를 몰라 얼토당토않게 우기는 사람은 차라리 애교로 봐줄 만하다.
욕설은 물론이고 단속 경찰관을 구타하는 일도 가끔씩 발생한다.
"내가 누구를 아는데 잠깐만…"이라며 휴대폰을 꺼내드는 '자기과시형'도 적지 않다.
황 경장은 "교통위반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의외로 많다"며 "경찰을 무시하는 투로 대들 때면 정말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경찰의 꾸준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연 10조원을 넘는다.
도로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06년 한햇동안 21만374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하루 평균 585건의 사고가 발생해 17명이 사망한 꼴이다.
교통법규 위반형태도 다양하다.
2006년의 경우 안전띠 미착용 등 안전운전 불이행이 54%로 가장 많았다.
신호위반이 11.8%,안전거리 미확보 10.1%,교차로 운행방법 위반 8.2%,중앙선 침범 6.8% 등의 순이었다.
도로교통안전공단의 장영채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은 "교통사고 발생원인은 무엇보다 운전자의 낮은 법규 준수의식,보행자를 경시하는 운전행태 등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안전불감증이 한몫하고 있다"며 "법질서만 제대로 지켜도 사회적 비용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교통경찰관을 위협하는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얼마 전 음주운전 단속을 피해 도망치는 운전자를 추격하던 경찰관이 사망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올 1월에는 음주운전 단속 경찰관이 오토바이에 치어 크게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황 경장은 "도로 한가운데서 단속을 하다 보니 항상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며 "음주운전 단속을 하다 다친 다음날도 근무를 서야 했을 때는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더라"고 말했다.
감명상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보험 부장은 "모든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당연히 단속돼 큰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가질 때까지 단속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며 "선진국 사례를 보더라도 교통질서만 잘 지켜도 교통사고의 절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해보험업계도 교통질서 준수 의식을 높이고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통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철/장진모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