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처음 내집을 장만했던 곳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이었다.

동(洞) 이름 치곤 예쁘다 싶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어디 사느냐고 물어 자랑스레 문래동이라고 대답하면 십중팔구 "네∼"하곤 말꼬리를 흐렸다.

80년대 초 종로구 부암동으로 이사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세검정이요"하면 다들 "좋으시겠네요.

거긴 공기가 참 깨끗하죠"하는 식이었다.

시내에서 가까워 출퇴근하기 편리한데다 뿌듯함까지 보태져 10년 넘게 눌러살다 보니 웬걸,집값이 요지부동이었다.

거주지를 말했을 때의 상대방 표정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낀 것도 그즈음이었다.

동네 이미지는 이처럼 은연중 사람을 기쁘거나 안타깝게 만든다.

어디는 부자동네 어디는 달동네라는 이미지가 형성돼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중매쟁이의 경우 대학 앨범을 보면서 얼굴과 함께 집주소를 살핀다는 마당이다.

그러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네까진 어렵더라도 슬그머니 고개를 떨구는 곳은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서울 관악구가 관내 27개 동 중 26개를 차지하는 봉천동과 신림동에 새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곳의 경우 1963년 서울로 편입된 뒤 인구 급증으로 봉천동은 12곳,신림동은 14곳으로 쪼개진 상태로 지내왔는데 행정동 축소를 계기로 각기 다른 이름을 짓기로 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동네 모습과 이미지도 변한다.

한때 이름있는 동네였던 정릉 일대의 빛이 바랜 게 그렇고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물난리 동네로 여겨졌던 목동 일대가 강남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렇다.

공장지대라며 기피했던 문래동과 구로동 일대 또한 신흥아파트촌으로 거듭났다.

이름이 동네 판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사람도 잘되면 이름 덕,그렇지 않으면 이름 탓을 하거니와 동네도 이름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동네를 만드는 건 이름보다 사람일 것이다.

근사한 이름 짓기와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끌어내려는 노력도 이뤄졌으면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