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최근 3년 동안 임직원들에게 강조한 단어는 무엇일까.

정답은 '고객가치'다.

구 회장은 2006년 신년사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3년 동안 신년사에서만 '고객가치'라는 단어를 35회 반복했다.

매년 신년사에서 평균 10회 이상씩 이 단어를 되풀이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구 회장이 '고객'이라는 말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는 최근 발표한 BI(브랜드 정체성)에 그대로 드러난다.

LG그룹이 새로 만든 BI는 '고객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올해 1윌 글로벌 CEO전략회의에서도 '고객가치경영'을 강조했다.

구 회장은 "단기목표 달성을 위한 현안 이슈 해결에 치중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의 경영으로는 결코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다"며 "당장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경영 패러다임을 보다 철저하게 고객가치 중심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 관계자는 "고객 스스로도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세심한 부분의 가치까지 미리 파악해서 제공해야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 고객 가치경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LG그룹의 '고객 가치경영'은 지난해부터 한층 강화됐다.

고객 가치경영의 성과가 실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6년 부진한 실적을 보였던 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 등 주력 계열사 3인방이 모두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을 경신한 것. 그룹 매출도 사상 처음으로 9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경영실적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11조2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매출 100조원,수출 500억달러 등이 올해 목표다.

그룹 관계자는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들어가는 상장사가 지난해 2개에서 올해 4개로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고 했다.

LG를 강하게 만든 정신적인 밑바탕이 된 '고객 가치경영'은 구 회장이 처음 들고 나온 것일까.

아니다.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이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만들 때부터 LG의 경영청학 밑바탕에는 '고객'이 자리잡고 있었다.

구자경 명예회장도 이 철학을 계승했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구본무 회장은 창업정신을 임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일깨우는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이른바 '초심 경영'이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1954년 고객들의 욕구를 읽어내 국내 최초의 치약을 개발했다.

당시만 해도 외산인 콜게이트 치약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구 창업회장은 "버터 먹는 미국사람 치약하고 김치 먹는 한국사람 치약은 달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 기호에 맞는 물건을 만들어보자"고 직원들을 독려,히트상품 제작의 산파가 됐다.

1966년 국내 최초 합성세제 '하이타이'를 개발했을 때 구 창업회장은 행동으로 고객가치경영이 무엇인지를 임직원들에게 보여줬다.

그는 주택들이 밀집한 골목의 빈터를 찾아다니며 주부들이 보는 앞에서 하이타이를 이용,직접 빨래를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도 '고객'만큼은 철저히 챙겼다.

구 명예회장 자서전을 살펴보면 고객에 대한 지론이 자주 등장한다.

"신제품의 아이디어는 다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고객은 우리의 스승이며,혁신의 기본은 고객에 대한 '인식의 혁신'이다","고객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바로잡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자성의 계기가 된다면 어떤 고통이 따르더라도 주저해서는 안된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룹 관계자는 "'고객가치'를 기반으로 한 'LG식 경영'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을 꿰뚫고 미래를 내다보는 긴 안목으로 묵묵히 차근차근 단단하게 준비해 온 것"이라며 "1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기업의 경영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