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급성치매같은 섬망…우리 부모님도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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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정모씨(38)는 평소 건강하던 칠순 노모가 최근 잠을 자다 몇 번이나 벌떡 깨어 갑자기 흥분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식은 땀을 흘리며 동공이 확장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때로는 밤에 잠자지 않고 커튼이나 벽에 걸려 있는 옷을 보고 '도둑이다''남자가 저기 서 있다'라며 겁먹은 목소리로 외치는가 하면 전등 불빛을 향해 '불이야'라며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
낮에는 괜찮은데 밤만되면 화장실 위치를 몰라 요실금을 하기도 했다.
노모는 잠을 설치며 아침이 될 때까지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정씨는 이를 전형적인 치매 증상으로 짐작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섬망'이란 생소한 진단명을 들었다.
섬망은 증상이 치매와 일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섬망은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치매와 달리 짧은 기간 안에 치료가 가능하다.
섬망은 정신적 혼란이 지속돼 몇 시간 또는 며칠씩,수 주간 의식을 잃었다가 곧 되찾는데 정씨의 어머니처럼 다양한 증상을 함께 나타낸다.
이에 비해 치매는 현재로선 의식상태가 명료하지만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나빠지며 각종 신체 증상을 복합적으로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섬망은 감염,협심증,심근경색,심부전,신부전,간부전,탈수,혈당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당뇨병,알코올 또는 약물 중독이나 이로 인한 금단증상에 의해 나타난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수술을 받고 난 후 회복기에 섬망 상태에 빠지기 쉽다.
증상으로는 다양한 신체 증상 외에 의식혼탁,환각,졸림증,강한 경계심,불안,초조,흥분 등의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
매사 석연찮은 의심을 하게 되고 환영을 보며 말할 때에는 발음과 논리가 산만하다.
이 같은 섬망 상태는 대개 밤에 심해졌다가 아침에 괜찮아지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섬망은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되기 쉽다.
환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급하게 병원을 찾지만 증세가 몇 시간 후 나아지면 가족들이 안심하고 잊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만약 원인질환을 치료하지 않고 환자를 장기간 방치해 두면 보호자가 없는 사이 특정 증상이 심각해져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특히 뇌의 한 부분에 이상이 생겨 섬망이 나타난 경우라면 방치 시 치매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섬망 의심 증상이 있으면 환자를 즉시 병원에 데리고 가 어떤 원인 질환이 있는지 자세히 진찰해 봐야 한다.
김영돈 대전 선병원 신경정신과 과장은 "원인 질환을 조속히 치료하되 증상이 심하면 일단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야 한다"며 "환자가 불안해하거나 강박관념이 심해질 때 자극적인 소리나 빛은 피하고 조용한 환경 속에서 지내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불안과 혼란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간병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지금이 밤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환각 증상을 보일 때에는 환각을 일으킨 실체가 무엇인지를 침착하게 가르쳐 주든가 또는 만져 보게 하면 도움이 된다.
그림자가 생기는 물건은 치우는 게 좋다.
아울러 공포감을 느끼지 않도록 환자를 부드럽고 안정되게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또 섬망이 나타나는 동안 환자에게는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증상이 가볍고 의식이 잠시 돌아오면 식사나 따뜻한 음료수를 준다든가 화장실로 데려다주는 등의 도움을 적시에 제공토록 한다.
처방약이나 불법 약물,파이프나 바늘 같은 약물투여 장비 등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물건은 치운다.
환자는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없어 사고를 당하기 쉽기 때문에 결코 혼자 있게 해서는 안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