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질서가 국가경쟁력이다] (5) 화재불감증부터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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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전선…나뒹구는가스통…'화재의불씨'부터잡아야
#1.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작년 5월 경기도 여주에 있는 사적 제195호 효종대왕릉 재실 앞마당에서 버젓이 버너에 불을 붙였다.
취사도구를 반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였지만 문화재 앞뜰에서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요량으로 LPG통까지 들여놨다.
유 전 청장은 그러나“그게 무슨 문제냐”며 오히려 언론에 불만을 드러냈다.
#2.지난 11일 오후 서울시내 중심가 H빌딩 옆에선 때아닌 화재소동이 벌어졌다.
H빌딩 앞을 지나던 한 행인이 무심코 버린 담배 꽁초 불이 건물 옆에 놓여있던 쓰레기 더미에 옮겨붙은것.
소방서가 가까이 있어 큰화는 면했지만 자칫 심각한 재해로 이어질 뻔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경제규모 세계 11위….한국이 경제강국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그러나 유 전 청장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곳곳에서 등장하는 시민의식은 아직도 후진국이다.
올 들어서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숭례문 화재,정부종합청사 화재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크고 작은 화재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후진국형 법경시 풍조와 안전불감증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이상한'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재발하는 배경에는 화재방지 관련 법규정을 지키면 손해이고 안 지킨다고 설마 사고가 나겠냐 하는 안이한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화재가 날 때마다 출동해 사진을 찍어 현장을 기록하는 10년 경력의 이시영 서울 종로소방서 소방사는 "시민 의식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실화나 방화가 사회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부족한 것 같다"고 전했다.
종로소방서 관할지역만 살펴보자.2006년과 지난해 종로서 담당지역에서 담뱃불이나 불티 등으로 인한 화재사고가 각각 43건과 45건에 달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종로서는 올 들어 자체집계표에 '부주의'항목을 신설했다.
올 1월부터 3월간 부주의로 인한 화재는 29건으로 전체 화재 69건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가게 간판을 설치하면서 어지럽게 늘어놓은 전선과 상가 주변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놓은 LPG 가스통은 굳이 재래시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종로소방서 송호정 소방반장은 "비오는 날 전기스파크로 인한 화재가 잦은데 전원장치가 들어가는 간판의 마무리 공사를 제대로 안했거나 노후된 전선관리를 소홀히 해서 생기는 사고"라고 설명했다.
특히 가스통은 단순 화재도 2차,3차폭발로 연결시켜 대형화재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2006년1월 돈위동 금은세공 작업장 화재의 경우 금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던 가스를 잠그지 않아 화재가 났는데 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화재를 진화하던 소방대원 3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묘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법질서 준수의식 확립과 이를 위한 생활형 조기교육 강화를 1차적인 해법으로 꼽는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선 '법 없는 사회,형벌 없는 사회'가 이상사회로 꼽혔지만 현대사회에선 '법=권리=생활'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성호 경민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대형 화재가 반복되는 것은 간단한 규정 하나 지키지 않는다고 '설마 나의집,나의 일터에서 불이 날까'하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화재의 위험성과 불에 대처하는 방법을 지식 전달 위주가 아니라 실험과 실습 위주로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두균 소방안전협회 교수는 "법을 바라보고 지키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단순 안전지식 전달교육이 아니라 화재발생 시 어떻게 대비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어릴 때부터 구체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머니들이 매니큐어를 지우는 데 사용되는 아세톤이 얼마나 쉽게 인화되는지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화재예방 관련 법규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게 된다는 식이다.
지식으로서의 법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의 법 준수 의식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소방체험 교육을 위해서는 일선 교사들에 대한 화재교육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화재관련 교육을 실험위주로 실시할 수 있는 소방 인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또 교육시설도 어린이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준법을 체화할 수 있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 유치원 등은 단층건물 내지 1층에만 들어서도록 돼 있다.
불이 났을 때 밖으로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피훈련을 반복적으로 실시하는 등 안전을 몸에 배도록 하고 있다.
미국 유럽 호주 일본 등 선진국에선 소방법규가 건축법 못지않게 까다롭고 엄격하다.
소방 관련 법규가 안전을 담보하는 기초 생활법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선진국에서 모든 주택은 현관에 소화기를 비치해야 한다.
일정 규모를 넘는 주택은 반드시 피난계단 등 대피시설을 갖춰야 한다.
허가되지 않은 전열 및 가스기구를 사용하면 영업정지를 받는다.
김동욱/이해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