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여름 어느 일요일 오전,한강대교 부근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여느날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시선은 다리 밑 강가로 쏠렸다. 수영복 차림의 앳된 소녀가 강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물살을 헤치고 15m정도 나아가더니 갑자기 다리 기둥 사이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 몇몇 남자들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웃통을 벗었다. 하지만 소녀는 악착같이 소용돌이를 빠져나와 다시 강을 헤엄쳐 건너기 시작했다.

"나 정말 보통 아니었어요. 12살에 한강을 헤엄쳐 건넜거든요. 내가 얼마나 악착같았는지 알 수 있을거예요." 가수 패티김씨(70ㆍ본명 김혜자)는 그때를 회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오빠들을 따라 수영을 자주 했지만 혼자 힘으로 한강을 건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겁이 나고 힘도 부쳤으나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살기로 물살을 갈랐다.

그의 이런 면모는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일흔이 됐는데도 하루도 빠짐없이 1300m씩 수영을 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2000m를 넘기기도 한다. 몸매 관리를 위해 단 한번도 배부르게 밥을 먹은 적이 없다. 팬들에게 늘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가수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10년 전부터 요가도 시작했다. 기자가 그를 만난 장소도 옥수동 근처의 어느 요가 학원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빼먹을 수 없다는 철칙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월ㆍ수ㆍ금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에 한 시간 반씩 요가에 몰두한다. 그에게 요가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기관리법일 뿐만 아니라 내면을 다스리기 위한 '수행'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김혜자의 인생 중 80%는 패티김에게 양보하고 삽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지요. 그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가수'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1960년 일본에 진출한 이후 1963년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기까지 그는 주눅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국에서 활동할 때보다 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머리도 높게 부풀렸다. 아무리 어려워도 '밤무대' 활동을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지금까지 지켜온 것이 '패티김'이라는 브랜드다.

그의 인생에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2년 당대 최고의 작곡가 길옥윤씨와 이혼,1976년 지금 남편 게디니씨와의 재혼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특히 50세가 넘으면서 찾아온 갱년기 앞에선 맥을 출 수가 없었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갱년기가 안 오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성격이 남들보다 강한 만큼 갱년기도 힘들게 겪었지요." 단순히 육체적인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비관적인 생각들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알 수 없는 허무함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전국에 있는 스님,신부님,수녀님 등 종교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사찰의 노스님에게서 들은 말 한마디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 스님이 '당신은 너무 높이 떠 있는 별이어서 외로워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올라갈 데도,이룰 것도 없으니 이젠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상을 향한 저의 투쟁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됐다는 뜻이었어요."

이후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30여년간 끊임없이 되뇌어온 '도도하자''강해지자'라는 주문을 풀었다. 남의 기분에 상관없이 표현하던 자신의 호불호(好不好)에도 조금은 여유를 줬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표정이 부드러워졌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소득은 두 딸과의 사이가 더욱 각별해졌다는 점이다.

김씨는 자신을 혹독하게 관리한 만큼 자녀들에게도 엄한 엄마였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그에게 '제너럴(장군)'이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워낙 바쁜 삶이었기에 아이들이 어긋나지 않도록 더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지금은 그의 교육 방식이 아이들에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오는 26일 목포에서 '패티김 데뷔50주년 기념콘서트'를 시작한다. 11월까지 제주,여수,부산 등지를 도는 전국 투어 공연이다."가수를 시작한 지 50년이나 됐지만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현재의 내 모습을 삶의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