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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중간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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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호 <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화가 www.choisunho.com >

    여의도 벚꽃축제가 끝나면 대학가에서는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봄꽃도 이젠 시들하고 초록이 제법 메마른 도심을 적실 때 대학 도서관에는 밤 늦도록 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학생들 표정이 상기돼 있다. 강의실에 들어가도 모두들 피곤한지 풀이 죽어 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면 "어제 밤 샜어요"라는 대답이 일쑤다.

    모두들 학점에 벌벌 떨고 있다. 학점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졸업해서 대학원 진학하고 마음에 드는 회사에 취직하려면 학점 잘 따는 일이 당연한 일이지만,당장 화창한 봄날 놀기에도 부족한 청춘인데 도서관에서 머리에 쥐나도록 공부를 해야 하니 죽을 맛이다. 이 지긋지긋한 공부 언제 마칠까.

    졸업한 선배들이 멋진 차림으로 금의환향하듯 캠퍼스에 나타나 호기로운 이야기를 하면 시험공부에 찌든 후배들은 부럽겠지만 그건 잠시 봄바람 같은 것,그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매일 중간고사 같은 회사일로 머리를 쥐어 짤 것이다. 그래도 '대학시절이 좋았어'란 선배의 말꼬리에 은근히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세상사 어디에 있건 모두 그 자리가 힘든 자리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갔을 때 성공과 환희의 기쁨이 있다. 한 학기 학점이 좋으면 다음 학기 장학금의 기쁨이 뒤따르는 것도 이런 이치다.

    대학에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학기를 마치지만 인생에서는 어떤 중간고사가 있을까. 아침 교정을 걸어 내려오며 늦둥이 개나리 꽃잎에 비친 이슬의 반짝임에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질문이다. 그래 내 나이 오십이 지났으니 나도 이제 중간고사를 봐야지. 오늘은 나름 시험도 보고 성적도 매겨볼까. 그런데 시험은 어떻게 보나.

    그래 내가 지금 선 자리가 곧 학점이요,하고 있는 일이 모두 중간고사일거야. 다음 주까지 큰 그림 몇 점 완성해서 갤러리에 보내야 되고,내일까지 학회지 원고마감과 강의준비,특강 등 월간 일정이 수첩에 빼곡하다. 일상사가 모두 시험이다. 어제까지 살아오며 만나고 부딪친 삶과,성공하고 실패한 모든 일들이 모두 내 인생의 중간고사요 시험공부였던 것이다. 오늘을 잘 살아야 내일도 잘 살 수 있다. 인생의 최종 학점은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공부할 때 비로소 좋은 점수가 나올 것이다. 자기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사람이야말로 각 과목의 수석들이다.

    나도 인생의 중간고사를 잘 보고,학생들 밤 새워 공부하듯 열심히 그림 그려 내 삶에 한 번밖에 없는 학기말 고사를 잘 치러 세상으로부터 멋진 학점을 받아 '참 잘했어요' 박수 받으며 졸업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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