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시장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민스키 모멘트'라는 게 있다.

이 말은 낙관적 기대가 어느 순간 외부 충격에 의해 비관적 기대로 급반전하면서 시장 혼란이 나타나는 상황을 의미한다.

미국 경제학자인 하이먼 민스키가 '금융 불안정정 가설'에서 은행과 투자자들의 급격한 기대 변화가 금융위기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한 뒤 생긴 말이다.

민스키 모멘트가 주목받는 것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때문이다.

주택시장에 대한 낙관적 기대로 처음에는 주택담보대출이 급팽창하고 자산가격도 올랐지만 어느 순간 이런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신용 경색과 자산가격 급락이 이어진 게 민스키 모멘트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의 장기 불황 역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비관으로 바뀌면서 초래됐다.

주식시장에서는 낙관적 기대가 비관적 기대로 바뀌면서 주가가 급등락하는 현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1930년대 대공황도 흔히 알려진 통화정책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경제주체의 기대 변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이처럼 경제주체들이 품고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는 단순히 기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물 경제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경제학 이론 중에 '태양흑점론'이라는 게 있다.

미국 경제학자인 카스 교수와 쉘 교수가 1970년대 주장한 이론으로 경제주체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바뀌면 경제의 펀더멘털에 변화가 없더라도 실물 경제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들 두 교수의 태양흑점론은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제본스의 '태양흑점설'에서 용어를 빌려온 것이다.

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당시 제본스는 18세기 초~19세기 말 태양흑점 활동의 빈도가 영국에서 발생한 14차례의 경제위기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태양 복사에너지의 변화가 중국이나 인도의 작물 재배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영국의 경제 펀더멘털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경제에서 태양흑점 같은 자연현상이 경제의 펀더멘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난센스에 가깝다.

카스 교수와 쉘 교수도 제본스의 주장에 액면 그대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태양흑점 같은 외생 변수가 경제주체의 기대를 변화시키고 이것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용어를 빌려 썼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경제주체의 정보 취득 능력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데도 낙관적 기대와 비관적 기대가 순간순간 교차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는 결국 금융시장과 금융거래 기법의 발달로 일종의 쏠림 현상이 심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면서 작은 정보 하나에 금융시장이 일희일비하고 때로는 투기세력이 가세해 시장을 한 쪽 방향으로 몰고가는 경우가 많아진 탓이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건전한데도 단지 경제주체의 기대 변화로 경제활동이 위축되거나 금융시장이 요동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이처럼 불필요한 기대의 변동에 따라 비효율성이 발생하는 것을 '파레토 열위'라고 부른다.

이 같은 경우가 생기면 정책당국이 나설 필요가 있다.

예컨대 외환시장이 급격한 기대 변화로 출렁일 때 외환당국이 나서 "급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구두 개입에 나설 수 있다.

또 기업들의 투자심리 위축으로 경기가 부진하다면 투자 확대를 위해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진작시키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 수준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각종 최신 정보는 물론 정책당국의 정책 방향까지 예상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대 자체를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 기대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보가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시장 시스템을 개선하고 감독체계도 그런 방향으로 정비해야 한다.

또 정책 방향을 결정할 때는 일관되고 신중하게 함으로써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불확실성은 낮춰야 한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둔화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내외 경제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형성될지,또 정부는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시점이다.

김근영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국제경제연구실 과장